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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ul 30. 2022

육상 찍먹과 동네북

등교가 곧 등산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단지 벅찬 고도감이 느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산을 넘어야 했다.

중학교란 곳에 와보니 그랬다.


여름이면 풀냄새가, 겨울이면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반겨주었던 등굣길.

자라나는 것들의 자취와 꿈꾸는 것들의 발자국으로 꾹꾹 눌린 길이었을까.


/


14살에겐 화창했던 어느 날, 체육 선생님이 달리기 좀 한다는 친구들을 불렀다.

100m 뛰어보라고.


뛰는 가슴 부여잡고 출발선에 섰다.

휘슬이 울렸다.


이 악물고 튀어 나갔지만 절반까지는 내가 밀렸다.

70m를 지날 때쯤 따라잡았다.

100m 지점에 도착하니 옆 친구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달리기 후, 체육 선생님이 나의 아킬레스건을 만지며 중얼거리셨다.

이 작은 몸에서 그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


그 뒤로 나는 대전광역시 교육감기 육상대회 참가를 위한 한 달간의 훈련을 시작했다.


묵묵히 훈련만 했다.

뛰는 게 좋아서, 초코파이가 맛있어서.

훈련 후 먹는 초코파이가 뭐 그리 맛있다고.

군대에서 주는 초코파이가 이런 맛이었을까, 라는 생각까진 못 했을 테지만.



'스파이크'라는 육상 전용화를 신고 달렸다.



대회 당일, 가만히 있는 사람의 심장이 그렇게 빨리 뛸 수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비록 날뛰는 심장에 부응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6명이 뛰었던 200m는 4등을 해서 예선 탈락.

100m 계주는 3등 했나, 사실 잘 모르겠다.

바통터치를 할 때 나온 실수가 너무 강렬하게 각인되었는지, 다른 것은 기억나지 않았다.


/


기회는 한 번 더 주어졌다.

2학년 때 다시 한번 학교 대표로 출전할 수 있었다.

100m 계주만 참가했다.


이번에는 방송국에서 우리를 취재하러 나온다고 했다.

나중에 방송 보니까 나는 없었다.

왜 없었을까?

그 자리에 없었나?


내게 카메라를 들이댔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푹푹 박히는 스파이크의 느낌은 좋았다.

가랑비는 시원했다.

지난날의 실수가 밑거름이 되어줄 것만 같았다.


/


그건 착각이었다.

이번에도 바통터치에서 삐끗했다.

바통이 손에 닿지 않았을 때의 당혹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2등 했으니 다행일까?

그럴 리가.

1등 했어도 나의 아쉬움을 달랠 수는 없었을 것이다.


/


그 뒤로는 공부를 했다.

운동이 힘들어서 그랬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트로피도, 참가 증명서도, 사진도 없지만 당시의 경험은 나를 지탱한 뿌리요, 활력이다.


/


물론 그 뒤로 나의 단거리 달리기는 하락을 면치 못했다.

친구들도 잘 뛰고 동생도 나보다 잘 뛴다.


난 급히 방향을 선회했다.

'장거리 달리기' 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단거리든 장거리든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


글에는 마땅히 어떤 메시지를, 특히 울림 있는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오늘은 그냥 썼다.

물론, 이전 글에는 있었냐고 물어도 딱히 할 말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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