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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Aug 06. 2022

책 읽는 이유

책 읽는 사람들은 말한다.

책은 얼어붙은 마음을 깨부수는 도끼요, 삶의 풍요이자, 즐거움이며 지혜의 원천이라고.


그 위대한 말씀을 반박할 생각은 없다.

나 또한 동의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러나 최근엔 어떤 불쾌한 근본 원인이 느껴졌다.


할 게 없어서 책을 읽는다.


미친놈처럼 보이겠지만, 그게 근본적인 이유 같다.

감기인지 코로나인지 모를 것인 불쑥 찾아온 지금, 이 아픈 몸을 이끌고 써봐야겠다.

병적인 독서를 부러워하는 또 다른 미친놈이 없기를 바라며.


/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어땠나.

스스로 뭔가를 읽은 기억이 없다.

뛰어노는 게 재밌는데 뭐 하러 읽겠는가?

그 당시에 홀린 듯 텍스트를 읽었다면 한동안 피곤했을 텐데 다행인 걸까?

이씨 가문에 천재가 나왔다느니, 영재가 분명하다느니.


초등학교 때는 어땠나.

그 시절에 읽을 책이라곤 만화책 말고 더 있나?

소설 하나가 기억나기는 한다.

'요술연필 페니'라는 소설이었는데, 대략적인 줄거리가 아직도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필통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필기구 친구들이라는 이야기가 어찌나 매력적이었는지.

한창 빠졌을 땐, 가끔씩 조심스레 필통을 열어서 내 지우개와 연필들은 살아있는지 확인해 본 적도 있었다.

그 친구들이 시험문제도 풀어주고 이것저것 해준다는데, 살아있는지 확인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중학교 이후부턴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뭔가 읽기는 읽었다.


/


할 게 없어서 책 읽는다.

이 미친 소리는 뭘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렇다.

하루 종일, 일 년 내내, 평생 동안 꾸준히 할만한 게 독서밖에 없다는 뜻이다.


운동.

매일매일 할 수는 있으나, 한 번에 반나절 이상 지속하기는 어렵다.


글쓰기.

뭔가 읽어야 쓸 수 있다.

쓰면서 읽어야 필력도 좋아진다.

일 년 내내 하루 종일 쓰다가는 미쳐버릴 수도 있다.


유튜브.

3시간만 보면 미쳐버린다.

뇌가 뒤집히고 속도 뒤집힌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루 종일 영상을 볼 수 있는 걸까?

과학을 들이밀지 않더라도, 당신의 뇌는 안녕하신지 묻고 싶다.

세상이 어지럽지는 않냐고.


/


내겐 선택지가 없다.

책 말고 뭐 있나?


과거 일상이었던 게임은 10년 만에 질렸다.

좋았던 추억만 간직하고, 다신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친구 만나는 것도 좋지만, 그건 내게는 일상이 아니라 특별한 일이다.


/


당연히 일 년 내내 하루 종일 책만 읽지는 않는다.

그랬다가는 진짜로 미쳐버린다.

푸른 바다와 절벽 아래에 무릉도원, 에덴동산, 진리의 세계가 있다고 외쳐대는 온갖 주인공들을 진작에 따라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튜브, 운동 그리고 글쓰기를 적절하게 섞어가며 일상을 보낸다.

그래도 지루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행복한 건 왜인지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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