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24개월이 지날 때쯤 스쿠터를 사주었다.
또래 아이들이 타길래 우리 아이도 잘 탈것을 기대하며 사주었으나 영 타질 못했다.
우리 아이 보다 어린 애들이 타는 걸 보고 부러워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별 걸 다 부러워했다 싶다.
아이마다 취향이 있는 것이고 우리 아이는 스쿠터 취향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친구의 추천으로 밸런스 바이크를 사주었다.
마침 탈 것을 하나 사고 싶었는데 마땅한 게 없던 차에 알게 된 밸러스 바이크였다.
밸런스 바이크는 아이의 취향과 딱 맞았다.
그러길 2년이 지나 5살이 되었고 할아버지가 보조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사주시면서
두 개를 번갈아 타고 다녔다.
그리고 6살이 된 해 여름에 아이가 갑자기 보조바퀴를 떼어달라고 했다.
"아직 6살이고 보조바퀴를 떼고 타기에는 어린 거 같은데"라고 내가 말해보았지만
"괜찮아, 못 타면 다시 달면 되지. 그래도 보조바퀴 떼서 타고 싶어."라고 했다.
우리는 자전거 점검도 하고 보조바퀴도 떼기 위해 자전거 수리점으로 향했다.
고장 난 체인과 구멍 난 바퀴를 바꾸고, 모든 걸 점검한 다음 마지막으로 보조바퀴를 떼어달라고 했다.
나는 그때도 좀 이른 감이 있다고 생각했었고 다시 달러 와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수리점 근처에서 아이 아빠가 아이의 자전거를 잡아주면서 두 발 자전거를 태워보았다.
역시나 옆으로 쓰러지고, 발 떼면 다시 쓰러지고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하지만 아이는 지루해하거나 보조바퀴를 다시 달겠다고 하지 않았다.
"엄마, 아빠가 옆에서 잡아주고 운동장에서 연습 몇 번 더 하면 될 거 같아"라고 하면서 기대에 차 있었다.
자전거를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차장에서 걸어오는데 아이가 말을 했다.
"엄마, 왠지 기분이 좋아요."
내가 물었다. "뭐가?"
아이가 대답했다.
"보조바퀴 뗀 거요. 아빠가 조금 도와주면 탈 수 있을 거 같아요. 내일 아빠랑 자전거 연습하러 갈 거예요"
아이의 대답에 나는 조금 놀랐다.
마냥 어리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아이는 어느새 몸과 마음이 훌쩍 자라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보조바퀴를 떼는 것이 왜 아이를 즐겁게 만들었을까'
기분이 좋은 건 아마도..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연습하면 탈 수 있다는 마음이 아이를 설레고 즐겁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 생각은 어쩌면 아이가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이 투영된 추측일지도 모른다.
엄마들은 항상 무언가를 학습과 연결시키는 유전자가 몸 어딘가에 있으니.
하지만 분명 아이를 기분 좋게 만든 그 과정은 아이가 몸소 느꼈을 것이라 믿는다.
아이는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잘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아이 스스로 정하고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부모는 지켜봐 주고 지지해 주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는 걸 아이를 통해 또 한 번 배웠다.
앞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아이 스스로 경험하고 느껴볼 것이다.
이번처럼 즐거움도 있겠지만 좌절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아닌 나 자신에게 다짐했다.
즐거움뿐만 아니라 아이의 좌절도 지켜볼 줄 아는 엄마가 되자고.
아이 스스로 느끼는 그 과정에 성급하게 나서 설레발치는 엄마는 되지 말자고.
나에게 두 발 자전거는 무엇일까.
실패를 걱정하기 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생각이 나를 설레게 할 그 두 발 자전거는 무엇일까.
아이는 나에게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게 해준다.
그래서 용기내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능력이 부족하여 독자가 나 한 명이 될지라도 그래도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시도하게 해준다.
나는 이렇게 나의 아이를 통해 나를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