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는 경우는 간혹 발생한다. 의도가 아니어도 사소한 말실수나 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가 상대의 감정을 자극하는 상황은 종종 일어나는 흔한 일이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 사이라면 큰일이 아닐 수 있지만 따지기 좋아하는 까탈스러운 지인이라면 불화로 이어져 서로감정을 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이 직장에서 발생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같은 직책의 동료라 해도 상한 감정은 금세 수습이 어렵고 사무실 내의 갈등으로 진행될 수 있으며 상사가 부하 직원의 말실수 때문에 기분이 언짢아지면 불같은 호통이 떨어지기도 한다. 업무와 관련이 없는 상황이라면 정중히 사과를 하면 해결이 가능하지만 업무상의 중요한 대화나 거래처직원과의 문제라면 사소한 말실수 때문에 계약이 틀어지는 경우는 실제로 발생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까닭에 관계에서 발생하는 일로 엮여 사는 게 우리의 일상이고 좋은 일, 궂은일 순서 없이 겪고 사는 것이 다름 아닌 인생이다. 그러나 자신으로 인해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면 의도든 아니든 해결하지 않으면 원만한 관계 회복은 불가능하며 한번 시작된 갈등은 더 큰 불화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가깝게는 가족 내의 작은 갈등이 불화로 확대되기도 하는데 동서 간의 불화나 고부간의 갈등도 따지고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작은 일이 크게 확대되는 것이며 심지어 말하지 않았던 부부간의 사소한 문제가 이혼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적지 않게 벌어진다.
사노라면 일이 계획대로 안 되는 경우는 너무 많지만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아도 예상 못한 변수가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짚어 보면 첫째 인간은 완벽할 수 없는 피조물이기 때문이며 둘째는 대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예로 평소 대화가 많은 친분이 있는 사이라면 직장에서의 개인적인 실책은 무마가 가능하지만 대화가 단절된 상태라면 사소한 실수도 용납이 안된다. 업무 중에 발생한 사소한 실수 하나가 프로젝트를 물거품으로 만들거나 큰 예산의 손실을 내는 상황은 실제로 일어난다. 언제나 조직사회에서는 책임이 따르며 업무상의 불화가 발전해 피해가 발생하면 소송까지 진행되는 경우는 그다지 드문 상황은 아니다. 필자는 사업을 하면서 민사소송을 여러 번 했다. 인생을 살면서 경찰서와 법원 출입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필자는 법원 문턱을 자주 넘나들었다. 계약서에 명시된 자신의 실책이라면 법원에 갈 필요 없이 본인이 손해를 보더라도 합의를 하면 그만이지만 서로의 의견이 대립되어 한 치의 양보도 없다면 곧바로 민사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빈번하게 일어난다. 사실 이런 경우도 원칙적으로는 소통의 부재가 원인이며 대화를 통해 타협을 못하니까 소송을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합의가 안 돼서 법원에 소장을 내면 재판 전, 판사는 지급명령서를 발행한다. 보통 지급명령서를 받은 사람은 대부분 돈을 지급하지만 당사자가 손해 볼 수 없다고 이의제기서를 제출하면 양측 간의 소송은 곧바로 진행된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계약서가 있고 증거와 녹취기록이 있으면 재판에 승소하는 게 상식이지만 재판은 절대 그렇지 않다.
프로젝트가 크고 거래액수가 많다면 양측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의뢰인에게 소송비를 받은양측의 변호사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법정 싸움을 벌인다.
민사사건 하나의 재판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경우는 극히 희박하고 준비서면과 이의제기서, 증거와 녹취록 등이 총동원되어 양측의 공방은 계속되기 때문에 4~6번의 공판을 거쳐야 재판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증거로 사용되는 자료는 사소한 양측 간의 대화 내용도 녹음이 되었다면 재판을 뒤엎을 수 있는 증거가 된다.
민사재판인 경우 1년 안에판결이 나면 아주 빠른 것이지만 보통 2년에서 3년이 소요되는 상황이 많다.
만일 거래 액수가 어마어마하다면 고등법원에서 대법원까지 재판이 진행이 되므로 재판이 10년을 가는 상황도 있으며 이런 재판은 뉴스를 통해 종종 보도되는 사실이다.
돈을 받으려는 원고나 돈을 지불하지 않는 피고는 재판 때문에 엄청난 소송비를 부담해야 하고 몸도 마음도 피폐해지는 것이 장기간의 소송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비즈니스는 어떤 경우라도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므로 조금이라도 손해를 감수하는 CEO는 없다.
눈곱만큼의 허점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파고들어 증거로 채택하는 게 재판이며 승소하기 위해 허위 증언도 하는 것이 소송이다.
물론 거짓 증언은 위증죄 처벌을 받지만 원고나 피고가 매수한 증인은 대가를 위해 감옥 가는 것도 불사한다.
민사소송의 대부분은 돈을 못 받거나 계약서에 명시된 견적 이하의 돈을 받는 경우 또는 어떤 일로 인해 금전적 손실을 입었을 때 양측의 합의가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소송을 통해 해결을 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소송의 원인을 자세히 보면 고의로 이득을 취하려는 악덕업자가 아니라면 사소한 실책이나 대화의 부재로부터 시작이 되는 경우가 이외로 많다.
회사 사정이 나빠서 결제기간을 좀 더 연장해 달라고 부탁을 하면 친분이 있는 관계는 어느 정도의 말미를 줄 수 있지만 대화가 없는 오직 업무상의 관계에서는 기간이 조금만 늦어도 소장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소통의 단절은 실책을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관계를 단절시키는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한다.
즉 일이 잘못된 방향으로 틀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 대화의 단절이며 어떤 경우라도 사회는 결과만 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는 사유는 이해조차 불가한 억측이 된다.
그렇지만 대화는 때로는 마감도 늦출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일 뿐만 아니라 사람, 사람과의 불화도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사소한 오해가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자신에게는 별일 아닌 것 같은 일이 상대에겐 큰일이 되기도 한다.
며칠 전 필자는 1년이 넘게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온 지인에게 결례를 범했다.
문제의 발단은문자를 잘못 보고 오히려 아무 일도 없는 지인에게 따지고 지적질을 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문자를 다시 봐도 의아한 나는 궁금한 나머지 다시 또 따져 물었고 상대의 반응이 없자 해가 질 때까지 나도 문자도 보내지 않았다.
저녁 늦게 다시 무슨 의도였을까? 하고 문자의 내용을 확인하려는데 그때야 내가 받을 메시지가 아침 일찍 도착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너무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다시 급하게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진 상태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사과를 반복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상대는 알았으니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이 죄송하고 후회스러워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오로지 나의 실수로 인해 상대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든 것이다.
기회가 되면 나중에 근사한 곳에서 훌륭한 식사를 대접해야지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다음 날 아침에도 찜찜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그분께 진심으로 사죄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가 사는세상은 저마다 다른 개성들이 존재하고 얼굴도 몸도 DNA 조차 다른 개체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곳이 우리가 속한 이 사회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이 사람 사는 곳이며 사건, 사고도 잊을만하면 발생하지만 결국 세상은 좋은 사람들의 긍정의 힘으로 돌어가기 마련이다.
사람의 마음에 따라 긍정과 부정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세상사이지만 어쩌다 불화가 있더라도 서로 대화를 통해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우리네 모습이기도하다.
앞을 보면 긴 것 같아도 돌아보면 짧은 것이 인생이며 한 번뿐인 것 또한 인생이다.
우리가 속한 경쟁 사회는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고 앞만 보고 질주하는 상황들이 어찌 보면 오늘날 첨단시대의 밑천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사람, 사람을 이어주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대화이며 대화는 고단한 일상에서 여유를 제공하는 수단이 되고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도구가 되는 것도 대화이다.
소통의 부족으로 오해가 생기기도 하지만 극한 상황에서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 것이 대화이다.
자살하려는 사람을 대화로 살릴 수 있고 테러리스트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것도 부모와의 대화이며 마음에서 우러난 진실한 대화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법이다.
그러나 대화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며 사랑은 신께서 인간에게 부여한 사명이기도 하다.
사랑이 없으면 대화도 관계도 형성될 수 없고 교류 또한 불가능하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고통과 괴로움도 멈추게 하며 불치의 병을 치유하는 효능도 있다.
그렇지만 사랑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누구와 커피 한잔을 나우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고 술자리에서 누구를 보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며 퇴근길, 엄마께 드릴 케이크 하나를 사는 것도 사랑이고 배가 고파도 퇴근하는 남편과 늦은 저녁을 같이 먹는 게 사랑이다.
배려하는 마음도 사랑이요.
특히 자신 보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은 진정한 사랑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올가 토크루추크'의 소설 [방랑자들] 중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은 "Jesus loves even you." (주님은 심지어 당신도 사랑하신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