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고 하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는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필자가 고등학교 때 배웠던 한용운 님의 '복종'이라는 시다.
시에서 화자는 여성적 어조의 부드러운 경어를 쓴다.
조건 없는 배경에서 감상한다면 연인을 향한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한국 여인의 사랑의 속삭임을 듣는 듯하다.
그러나 당시 시대적 상황이 일제 강점기였음을 감안하면 일제 탄압에 대한 저항이며 자유를 빼앗긴 민족의 절규를 미화한 것이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당신'은 주권을 자발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국가를 뜻한다.
종교계에서도 이 시를 자주 인용하는데 교회에서의 당신은 절대자인 신을 뜻하며 신에 대한 신앙적 복종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시인이 말한 당신에 대한 복종은 강압적 명령에 따르는 행위가 아닌 마음에서 스스로 원해서 하는 자발적 행동을 뜻하는 것이므로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행위이며 자유보다 달콤한 아름다운 복종은 분명 애국의 충정이며 신자라면 진정한 신앙을 실천하는 행위가 된다.
즉 시에서 말하는 '복종'은 자유 의지를 뜻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법률로 인정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며 세계 모든 민주주의 국가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인간으로 누려야 할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된다.
그러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한계는 명확이 정해져 있고 법적인 처벌이 아니어도 조선 시대까지는 관습과 통념에 따르는 도덕과 규범은 법적 처벌에 준하는 사회적 도태가 존재했다.
과거 신분에 의한 자유의 혜택은 차별적이었고 그러한 자유는 동서양이 동일했다.
개인의 자유 역시 신분에 따라 누릴 수 있는 한계가 있었으며 기초적 인간의 자유도 포함됐다.
서양도 가톨릭 법으로 분류된 권력에 따라 자유의 혜택은 전 유럽이 동일했으며 중세에는 관습과 문화 역시 교회 법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 권리마저 불평등한 것이었다.
반면 동양은 관습이 절대적인 것이었고 백성의 모든 생활 영역의 전부였으며 심지어 법도 관습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신분제도가 존재했던 시대였고 신분 자체가 법으로 보호받는 시기였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신분에 따르는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살았다.
역사적으로 신분제도에 쌓인 불만은 혁명으로 일어났고 그러한 백성들의 목소리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기반이 된 것은 동서양이 동일하다.
신분제도의 변화는 무엇보다 자유를 갈구하는 백성의 절실한 갈망이었으며 시대가 바뀌면서 개인의 자유 역시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자유란 책임과 의무가 동반했고 더 많은 자유의 혜택은 그 시대 사회가 필요하는 각자 개인의 노력에 의해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법으로 보호받는 신분제도는 사라졌지만 현대 사회는 경제적 여유가 더 많은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21세기 자본주의 경제는 이윤의 무한한 성장이 자유롭고 개인도 나라도 경제적 상승에 따른 혜택은 증가한다.
보다 나은 혜택이란 자유를 즐길 수 있는 범위의 폭이 확대된 것이며 돈으로 모든 게 거래되는 자본주의 사회는 사소한 것부터 첨단 과학, 고가의 서비스까지 금전적 거래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거 신분제도를 대체하는 것이 돈이며 명예와 고급스러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 경제적 혜택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인간은 열약한 환경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듯이 자본주의는 열약한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었다.
자본주의는 경제적 이윤획득이 제한이 없듯 신분상승 역시 개인의 노력에 따라 제한이 없다.
그러므로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에게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기본 권리를 보장해야 하고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개성을 존중하며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과거 동서양의 시민혁명과 개혁이 신분제도를 타파하고 대중에게 자유를 가져다준 사실은 역사에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수 세기에 걸쳐 이룩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더욱 발전시켜야 할 의무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세계 각국이 보수와 진보의 협력을 통해 시대에 맞는 정책을 펼쳐야 함은 강조에 강조를 해도 부족함이 없다.
원래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의 조율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고 나라와 시대에 따라 상이하게 적용되는 경제의 기류에 상응하는 정치는 필연적이며 글로벌 시대의 인터넷을 통한 투명한 정보 세상은 국경 없는 각국의 협력 없이는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연동된 글로벌 경제의 타격은 전 인류가 이미 경험을 했고 미국의 자국만을 위한 관세정책으로 전 세계 기업이 현재 고전 중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문제는 수 세기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이룩한 안정을 진보라는 명분으로 이제 와 개혁을 강행한다면 혼란만이 있을 뿐이며 사회는 더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사실 진정한 진보는 진실에 새로운 것을 더하는 것이지만 요즘 시대의 진보는 불완전한 것을 이 시대의 필요에
의해 대체하는 것일 뿐이다.
정권은 정당이 아닌 국민과 경제를 위한 정책을 시행해야 하고 여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여론이다.
그러나 여론이 들쑥날쑥하는 현상은 혼란 속에서 대중이 진실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대중이 과거의 경험으로만 세상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여론은 정당의 지지율만 나타내는 대중의 지표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국민의 목소리이며 정책 결정을 위한 국민의 뜻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자고 헌법을 바꾸는 것은 벼룩 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 시대의 경제는 한 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국경 없는 거래로 이루어지는 글로벌 경제의 포괄적 문제이다.
세계 각국의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해도 글로벌 경제는 해법이 없는 법이고 해결책이라면 근사치에 도달하는 방안만을 제시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경제 문제를 예측한 석학도 국가도 없었다는 사실을 세계는 이미 경험했다.
역사를 통해 경제가 위기에 처한 적은 여러 번 있었으나 특단적 조치는 언제나 일회성으로 그치고 말았다.
명심해야 할 사안은 보수와 진보의 열띤 논쟁을 통해 현안을 직시하고 정책을 도출해야 하는데 논의 자체를 거부한 현실에서는 경제 문제에 대해 아무런 기대를 할 수 없거니와 한 포기 희망도 없을 뿐이다.
급속한 과학 발전의 결과로 이뤄낸 첨단 세상은 개성과 조화가 없는 획일화된 사회를 만들었다.
대기업이 만든 아파트에 살고 대기업이 만든 자동차를 타고 대기업에서 만든 컴퓨터를 쓴다.
누구나 승진을 하고 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Life Style 이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희망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자기 자식들을 부모와 꼭 같은 복제품을 만들기 위해 교육시킨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이 꼭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동일한 식물도 성장이 다르고 동일한 품종의 동물도 제 각각이다.
하물며 사람의 몸도 크기가 다르지만 기업이 만든 사이즈에 맞춰 옷을 사 입는다.
한마디로 개성과 조화는 아예 없는 사회에 살면서 자기들과 다른 사람을 루저(loser)로 취급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승진을 위해 복종을 하고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 부당한 상사의 지시에도 따른다.
자유를 원하면서 복종하는 사회는 이율배반적(二律背反)인 삶이 아닐 수 없지만 그 주역들은 명문대를 나온 자칭 엘리트들이다.
너무 멀리 와 버린 것이다.
교사가 상위 10%를 위해서만 강의하던 교육처럼 사회도 그렇게 성장해 버렸다.
소위 지식층들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침묵을 하고 경제의 현역에서 일하는 개체들은 물가가 올랐다고 정부 탓만 한다.
개성이 보장되는 사회야 말로 건강한 사회이고 서로 다른 의견이 교류하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이다.
지금 세계는 혼란의 시대이다.
겉으로 보기엔 획일화로 정돈된 사회 같지만
자유를 억누른 채 우리는 살고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이런 말을 했다.
"정신이 억압된 사회에서 위대한 사상가는 출현한 적은 있었지만 그런 사회에서 생각하는 민중(intellectually active people)이 형성된 적은 역사적으로 없었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