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불쌍한 세상

페미니스트의 목소리

by Paul

20세기에 비해 21세기에는 이혼율이 부쩍 늘었다는 뉴스를 많이 접한다.
원인을 짚어보자면 세대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일하는 여성 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물론 첨단시대를 살면서 문화 수준, life style 이 향상된 탓도 있지만 이혼율이 증가한 직접적인 원인은 여성들이 당당한 경제 능력이 있는 사유가 가장 크다.
과거 7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 인력은 남성 인력에 비교 조차 할 수 없었으며 여성이 할 수 있는 일도 드물었다.
거기에는 관습과 통념도 매우 큰 몫을 했기 때문에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은 구분되어 있었다.
그런 사회적 관례는 미국이나 유럽도 다르지 않았는데 동양과 서양의 차이라면 사회적으로 남녀평등이 서양이 훨씬 빨랐다는 것뿐이다.
먼 과거를 거슬러 오르지 않아도 우리 할아버지 시대에는 시골에서 논 팔고 밭 팔아 아들만 서울로 유학을 보냈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딸은 고등학교도 보내지 않았던 집안이 많았다.
유교 전통 사회가 대를 이어 내려온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 때문이라 해도 천주교, 기독교를 믿는 크리스천 가족도 이와 같은 자식 차별은 다르지 않았다.
하기야 성당에선 여자 신자만 미사포나 모자를 쓰는 서양에서 건너온 관례는 오늘날에도 그대로이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신앙을 초월해 조상 때부터 내려온 관례가 정착되면 어느 나라나 전통적 관습을 깨지 못하는 것이다.
1980, 90년대에 여성 공무원은 말단직 밖에 없었으나 노태우 대통령 당시 여성 국장급 공무원이 임명되자 매스컴에 화제가 됐고 공영 방송 뉴스와 TV교양프로그램에 여성 국장님이 특집으로 출연할 정도였으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남녀 차별이었다.

근대화를 넘어 현대에 이르러 여권신장을 부르짖는 페니스트(feminist)의 주장에 여론이 힘을 실었고 페미니스들의 목소리는 산업화와 첨단시대를 거치면서 세계의 강한 기류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미국 역사를 보면 여성이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시기는 미국 헌법 수정 19조가 통과된 1920년이 최초였다.
1920년 이전에는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로 불리는 미국에서도 여성은 투표권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세상 모든 일은 오랫동안 짓눌렸던 억압이 터져 나오면 폭발력이 엄청나다.
1789년 일어난 프랑스혁명이 유럽 전역을 변화시켰듯 억눌렸던 미국 여성의 권리는 페미니스트가 여성 참정권을 주장하면서부터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19세기에서 1950년대를 1세대 여성주의(First wave feminsm)라고 부르고 1960년대를 2세대 여성주의(Second wave feminism)라고 일컫는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참정권을 획득하고 재산권, 의무교육의 권리,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가질 권리와 아동과 노약자 보호, 성폭력 예방, 사회복지와 노동환경개선 등 수많은 업적을 이뤄냈다.

영어로 여성을 정중하게 부르는 호칭 Miss는 미혼, Mrs는 기혼여성을 부르는 호칭이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르러 남자는 미혼, 기혼 모두 Mr.로 부르는데 왜 여성은 Miss, Mrs로 구분하느냐는 페미니스트의 주장을 통해 기혼, 미혼을 가리지 않고 부르자는 Mis라는 호칭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1980년 후반부터 성을 상품화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예쁜 여성 모델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상품을 광고하는 포스터와 방송이 여성상품화라는 것이고 성차별이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 거셌다.

하지만 광고란 원래 눈에 띄어야만 하는 특성이 있고 법적 제한이 없는 몸매가 드러나는 의상은 문제가 없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란 말이 있듯 기업 입장에선 소비자 절반이 남성인데 상품을 홍보하는 모델이 몸매가 좋고 예쁘면 그 광고에 시선이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어쩌면 여성 상품화라는 측면에선 이해할 수 있지만 과대 해석이라는 의견도 많다.

또한 MeToo 운동으로 감춰졌던 유명인들의 성착취 행위가 드러나 법적 처벌을 받게 된 것은 마땅히 환영할 일이다.

이 시대에는 남녀가 꼭 같이 돈을 벌고 능력 있는 여성은 남자 보다 돈을 더 버는데 이 시대에 다시 성차별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닐 수 없다.

가정에서 엄마가 바쁘면 아빠가 가사일을 하고 아빠가 바쁘면 엄마가 살림하는 것은 공평하고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한 가정 문제를 이슈화시켜 사회적으로 문제를 만들려는 일부 단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고 제사와 차례는 사라져야 할 악습이라는 주장도 고유한 한국의 전통을 자기들 편하자고 단체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정당성을 얻기 힘들다.

헤어져 살던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음식을 장만하고 가족 간의 사랑을 나누는 명절을 악습이라고 비방하는 것도 남의 가정 문제를 들쑤시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명절 연휴에 해외여행 가고 싶으면 가면 되고 부모님 댁에서 명절 쇠고 싶은 가정은 그러면 되지 명절은 악습이라고 단체로 주장할 필요는 없다.


언제부터인지 '간 큰 남자'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원래 간 큰 남자라는 뜻'겁이 없는 남자' '배포가 큰 남자'로 쓰였는데 요즘은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는 남자, 저녁 늦은 시간에 퇴근해서 밥 달라는 남자, 술 먹고 늦게 들어가는 남자를 모두 총칭해서 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아내의 허락을 안 받고 행동하는 남자를 뜻하고 인터넷에서는 간 큰 남자 시리즈도 있다고 하니 남자들이 기를 못 펴고 사는 세상이 온 것이다.

필자가 다니던 헬스클럽에서 새벽, 출근 전 매일 열심히 운동하는 젊은 의사가 있었다.

1년이 넘어 친분이 쌓이자 한번 저녁이나 함께 하자고 말했더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와이프한테 쫓겨나요. 나중에 점심이나 하시죠." 하는 것이다.

내가 놀라서 "그럼 친구들도 안 만나고 살아?" 하고 물었더니 "집사람 컨디션 좋을 때 허락받아야 해요." 하는 것이다.

아무리 남자들이 기를 못 피고 사는 시대라 해도 말만 들었지 50대인 필자에겐 쇼킹한 일이었다.

물론 사람 나름이겠지만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요즘 그렇게 사는 젊은 부부가 이외로 많다는 것이었다.

후에 병원을 개업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처갓집에서 개업 자금을 댔다는 얘기도 함께 들었다.

요즘은 결혼정보회사라는 업체가 있지만 20세기에는 일명 '뚜쟁이'라는 직업이 있었다.

중매쟁이로도 불리는 발 넓은 아줌마가 맞선을 주선하고 결혼이 성사되면 신랑 직업에 따라 받는 돈도 틀렸다.

1990년 대에는 의사, 변호사만 되면 열쇠 3개 갖고 오는 신부를 만난다는 말이 있었으며 3개의 열쇠는 병원이나 변호사 사무실 열쇠, 아파트 열쇠, 차 열쇠인데 대릴 사위로 팔려가는 결혼으로 보면 이해가 빠르다.

필자가 뉴욕에서 1990년 후반에 NewYork Times를 읽은 기사에 [한국은 Broker를 통해 결혼을 하는 이상한 풍습이 있고 Broker가 직업에 따라 신랑, 신부를 소개하고 결혼한다. 그러나 이런 결혼이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내용이었다.

한국에 대한 좋은 기사가 많은데 왜 하필 이런 기사를 썼을까? 하고 한국인 입장에선 그 기사를 쓴 기자가 괘씸했지만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뉴스에서는 황혼 이혼도 점차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함께 한 세월이 얼만데 손자까지 다 보고 이혼을 한다는 것이 처음 뉴스를 들을 때는 몹시 놀랐지만 생각해 보면 싫은 사람과는 절대 못 사는 사유는 젊을 때나 나이가 들어서나 모두 같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원칙적으로는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과정이고 못 보면 못 견디게 사랑하는 커플이 결혼을 한다.

하지만 조건에 맞춰 중매결혼을 하든 사랑해서 결혼을 하든 본인의 선택이고 순탄할 수 없는 결혼 생활은 부부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남자가 기를 못 펴고 살든 여자가 기를 못 펴고 살든 부부가 알아서 사는 한 가정의 문제이지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평가할 일은 전혀 아니다.

지금 한국은 저출산이 심각한 상황이라 정부에서는 그에 대한 정책도 펴고 있다.

그러나 애석한 사실은 우리 젊은이들이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는 현실에서 무슨 수로 출산율을 늘린단 말인가?

이 글을 보는 젊은 싱글들은 복에 겨운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다.

오늘의 남녀 세태를 보면 아들 가진 부모님은 남자들이 불쌍한 시대라 할 것이고 딸을 가진 부모님은 시대가 바뀌었는데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어쨌거나 페미니스트도 어르신도 남의 결혼 생활에는 간섭을 못한다.


조병화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결혼은 함께 늙고 싶은 사람같이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