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랑을 찾아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필자는 금요일이 제일 좋다.
친구를 만나 술잔을 기울여도 다음 날 출근할 걱정이 없고 단 이틀뿐이지만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에서다.
젊을 때는 여친과 함께 1박 2일로 여행도 자주 가고 좋아하는 레저를 만끽해도 다음날 피로를 풀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컨디션으로 한주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던 내가 중년이 되자 밖에 나가는 것도 싫어지고 친구 만나는 것도 귀찮은 homebody(집돌이)로 주말을 보내고 있다.
가끔 친척이나 지인 대소사도 귀찮아서 갈까 말까를 한참 고민하다 영양가 있는 행사만 골라서 간다.
'영양가'란 일을 하청 받을 수 있는 사장님이나 얼굴 도장 찍어서 득이 되는 결혼식과 장례식이다.
그러니까 친척 집 대소사는 마지못해 억지로 가는 것이다.
어제 금요일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맛있는 만찬을 푸짐하게 즐기고 오랜만에 넷플릭스 채널을 켰다.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은 넷플릭스에 본 영화가 하도 많아서 신작만 찾다가 없으면 채널을 돌린다.
원래 영화광인 필자도 다름이 없어서 서핑하다가 아만다 사이프리드(Amanda Syfried)가 출연한 영화에 리모컨을 멈췄다.
'레터스 투 줄리엣 Letters to Juliet'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출연한 영화는 다 본 줄 알았는데 나를 위한 금요일 심야 영화로 생각하고 침대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아만다 사이프리드(Amanda Syfried)는 '퀸카로 살아남는 법'으로 할리우드에 데뷔했고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에서 메릴 스트립의 딸로 출연해 'Abba'의 'Honey Honey'를 직접 불러 영화팬들에게 각인된 배우이다.
영화 '클로이'에서는 리암 니슨의 상대역을 맡았고 휴 잭맨이 주연한 '레미제라블'에서 코제트 역을 연기했던 할리우드의 스타 주연 배우이다.
특히 눈빛이 아주 예쁜 배우로 유명한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필자도 무척 좋아하는 배우여서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거의 봤는데 운 좋게 안 본 영화가 'Letters to Juliet'이었다.
영화의 Story를 이야기하면
'뉴요커' 잡지사에서 자료 조사를 하는 인턴으로 근무하는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는 기자 지망생이다.
약혼자 빅터와 함께 이탈리아 베로나로 여행을 가는데 결혼식도 하지 않은 신혼여행을 가는 것이다.
셰프인 약혼남 빅터는 몇 주 후 뉴욕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개업할 예정이어서 소피와 같이 여행을 갔지만 정작 빅터는 레스토랑 준비에만 몰두해서 트러플(송로버섯) 체취를 하러 갈 생각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트러플엔 관심이 없는 소피는 120km를 가야 하는 트러플 산지엔 빅터만 혼자 다녀오라고 하고 그동안 소피는 베로나를 관광하기로 한다.
베로나 거리를 관광하다 우연히 셰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된 '줄리엣의 집(Juliet's house in Verona)'을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연인들이 러브레터를 붙이는 벽이 있었다.
벽에는 수많은 러브레터가 붙어 있었고 편지를 붙이고 울음을 터트리는 여자, 발코니에서 연극 대사를 외치는 여자도 있었다.
잠시 후 편지를 모두 떼 내고 바구니에 담는 여자가 있어 궁금한 마음에 무작정 그 여자를 따라간다.
카페 2층에는 일명 '줄리엣의 비서'라는 사람들이 벽에 붙은 러브레터의 답장을 일일이 쓰고 있었다.
약혼자 빅터는 리보르노 와인 경매장에 가게 됐다며 며칠 걸릴 것이라고 전화가 왔기 때문에 소피는 그곳에서 러브레터의 답장 쓰는 일을 당분간 돕기로 한다.
벽에 붙은 편지를 떼던 중 벽돌이 떨어진 구멍 안에 접혀있는 빛바랜 편지를 발견한다.
그 편지가 이 영화의 소재인 50년 전 클레어가 로렌조에게 쓴 사랑의 편지이다.
소피는 답장을 쓰고 편지 봉투에 적혀있는 50년 전의 영국 주소로 줄리엣의 비서들이 하던 대로 우체통에 넣었다.
며칠 후 50년 전 편지를 쓴 클레어와 거만하기 이를 데 없는 그녀의 손자 찰리가 이탈리아 베로나 '줄리엣의 집'으로 답장을 보고 찾아온다.
비서들이 일하는 사무실에 불쑥 찾아와서 다짜고짜 왜 50년 전의 편지에 답장을 썼냐고 따져 물으며 소피에게 소리치고 간 건방진 손자 찰리를 따지러 쫓아간 줄리엣의 하우스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우아한 클레어(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서 있었다.
편지를 쓴 사람이 자기라고 밝힌 소피는 사랑스러운 클레어와 와인을 마시며 해가 떨어질 때까지 얘기를 나눈다.
클레어는 답장을 받아보고 50년 전의 연인 로렌조를 만나러 영국에서 곧바로 왔고 로렌조를 찾아 나설 예정이라고 했다.
어차피 약혼자 빅터는 레스토랑 준비에 바빠서 정신이 없는 까닭에 소피는 로렌조를 찾으러 가는 길에 기꺼이 동행하기로 한다.
그런데 문제는 로렌조 바톨리니라는 사람이 그 지역에 74명이나 살고 있었다.
여행을 온 사유가 로렌조를 만나러 온 클레어는 등록된 주소마다 한 집 씩 방문하기 시작했지만 계속해서 딴 사람 집만 방문하게 된다.
클레어와 소피는 계속되는 허탕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할머니 클레어가 못마땅한 찰리는 여행 내내 불만을 나타내며 소피한테 무례하게 군다.
자존심 상하는 말도 소피에게 퍼붓는 찰리지만 소피와 티격태격하는 여정에서 그 둘은 미묘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어느 날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충동적으로 키스를 한 두 사람은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각자 방으로 돌아간다.
2층 창가에서 두 사람이 키스하는 장면을 본 클레어는 살며시 미소를 짓는다.
다음날 아침 다시 로렌조를 찾으러 가는 세 사람은 클레어가 예감한 장소로 찾아갔지만 그곳은 로렌조가 묻혀 있는 공동묘지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내가 괜한 욕심을 부렸구나!' 하고 체념한 클레어는 로렌조 찾는 일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이튿날 소피와 작별 인사겸 와인을 마시러 카페로 향한다.
카페로 가던 도중 차창 밖의 포도밭에서 뭔가를 본 클레어는 갑자기 차를 멈추라고 소리친다.
포도원에서 작업을 하는 젊은 로렌조를 차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클레어가 본 로렌조는 젊디 젊은 청년이었고 아버지와 함께 포도나무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러나 클레어가 젊은 로렌조를 발견한 것은 틀리지 않았고 일하고 있는 두 남자는 클레어가 50년 동안 찾았던 연인 로렌조의 아들과 손자였다.
말을 타러 가셨다고 잠시 후면 할아버지가 돌아오실 것이라고 손자 로렌조가 말하자 갑자기 혼란해진 클레어는 자신이 너무 늙어버린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그냥 가자고 소피와 찰리를 재촉한다.
이윽고 말발굽 소리와 함께 그토록 간절히 보고 싶었던 로렌조가 등장한다.
말에서 내린 로렌조는 클레어를 다시 만난 것을 곧바로 확신하며 클레어 곁으로 다가간다.
두 사람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뜨거운 포옹을 나눈다.
로렌조가 클레어를 만난 사실을 축하하며 가족 3대가 파티를 열고 오늘 50년 만의 사랑을 다시 찾은 기쁨을 만끽한다.
한편 해야 할 일을 마친 소피는 숙소로 돌아가기로 하고 클레어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만 갑자기 찰리와 싹튼 사랑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로렌조의 아들이 데려다 주기로 하고 차를 탄 소피는 인사를 하고 떠난다.
소피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는 찰리에게 할머니 클레어가 말했다.
"You're a total idiot."(너는 완전히 멍텅구리야.)
"How many Sophies do you think there are on this planet?"(이 지구상에 저 소피가 몇 명이나 있다고 생각하니?)
"Don't wait 50 years liked I did."(나처럼 50년을 기다리지 말거라.)
"Go! Go! GO!"(빨리 따라가!)
급하게 따라간 베로나 호텔 발코니에서 소피와 빅터가 키스하는 모습을 쳐다본 찰리는 소피가 약혼한 사실을 다시 깨닫고 발걸음을 돌린다.
뉴욕으로 돌아간 소피는 편집장에게 클레어와 로렌조의 스토리를 쓴 글을 보여준다.
편집장은 재미있는 스토리라며 곧바로 잡지에 실겠다고 한다.
이제 소피는 인턴이 아닌 정식 기자가 된 것이다.
한편 약혼자 빅터는 레스토랑 개업에 정신이 없었다.
빅터를 찾아간 소피는 베로나 여행에서 자기 할 일만 하고 소피에게 무관심한 빅터에게 말한다.
"We didn't mind being apart from each other."
(서로 다른 시간을 보냈지만 우린 상관하지 않았어.)
"We're supposed to want to be each other all time." (항상 서로 함께 있고 싶어야 하는 거잖아.)
빅터는 "This is who I am." (이게 내 모습이야)
소피가 말했다.
"I know, I love who you are." (알아. 그런 너를 사랑했어.)
"But I've changed. It's not working."
(하지만 내가 변했어. 이젠 마음이 가지 않아.)
빅터와 이별을 선언한 소피는 클레어에게 청첩장을 받는다.
이탈리아로 간 소피는 클레어와 로렌조의 결혼식에 참석한다.
피로연에서 클레어는 소피가 쓴 답장을 낭송한다.
"Dear Claire,
'what' and 'if' are two words as non threatening as words can be.
But put them together, side by side, and they have the power to haunt you for the rest of your life.
What if?
What if?
I don't know how your story ended, but if what you felt then true love, then it's never too late.
If it was true then, why wouldn't be true now?
You need only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I don't know what a love like Juliet's feels like, a love to leave loved ones for, a love to cross oceans for, but I'd like to believe, if I ever were to feel it, that I'd have the courage to seize it.
And Claire, if didn't, I hope one day that you will.
All my love, Juliet.
클레어에게
'무엇'과 '그랬더라면'은 세상에서 가장 무섭지 않은 두 단어예요.
하지만 둘을 붙이면 당신의 남은 인생에 악몽이 될 힘이 생기죠.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될까....
당신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모르지만 그때 느낀 감정이 진짜 사랑이었다면 아직도 늦지 않았어요.
그때가 진실이었다면 지금도 같을 거예요.
당신의 마음을 따라갈 용기만 있으면 돼요.
줄리엣의 사랑이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지만 가족을 떠날 수 있는 사랑, 바다도 건널 수 있는 사랑이겠지요.
하지만 믿고 싶어요.
언젠가 그 사랑을 느낀다면 나는 그 사랑을 잡을 용기가 있을 거예요.
클레어!
아직 용기가 없다면 언젠가는 생기기 바랄게요.
나의 모든 사랑 줄리엣.
결혼식에서 찰리의 사촌을 연인으로 오해한 소피는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파티장 뒤 발코니에서 소피는 파혼한 사실을 말하고 찰리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잠시 후 오해가 풀린 소피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뜨거운 키스를 나누며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에서는 발코니가 자주 등장한다.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사랑을 고백했던 곳이 발코니이고 수 많은 오페라에서도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렀던 장소가 발코니이기도 하다.
현대 영화에 고전적 소재를 배경으로 사랑을 얘기하는 것이며 젊은이들의 사랑이 화폐로 변질된 시대이지만 소피는 그나마 사랑의 감정에 충실했던 주인공이다.
그리고 50년 전 사랑을 애타게 그리는 클레어의 진실한 사랑을 고전적 감성에서 오늘로 연결시켰다.
비단 영화가 아니라 해도 진실한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마력이 있다.
로맨스 영화는 수 없이 많이 봤지만 유명한 배우가 출연한 영화만 보았고 대부분은 killing time 이어서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로맨스 영화는 1995년작 아네트 베닝과 워렌 비티 주연의 'Love Affair'였다.
당시 20대 중반의 나이에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사랑이고 특히 아네트 베닝과 워렌 비티를 좋아했던 이유가 클 것이다.
아무튼 젊을 때는 누구나 로맨스 영화에서 느끼는 감성이 남다른 시기이고 젊은 날의 정서는 그런 러브 스토리가 특별히 흥미롭기 마련이다.
하지만 중년인 내가 'Letters to Juliet'을 보고 미소를 절로 짓고 바로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연유가 왠지 몰랐다.
특별히 겨울을 좋아하는 나의 계절적 감성 때문인지 매일 똑같은 일과를 오랫동안 반복했던 메마른 정서가 숨통이 트였는지 짐작이 안 되었다.
그러나 소피의 편지에서
But if what you felt then true love, then it's never too late.
'그때 느낀 감정이 진짜 사랑이었다면 아직도 늦지 않았어요.'
어쩌면 이 구절이 왠지 중년의 나이에 진실한 사랑을 갈구하는 내 마음의 하소연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What a beautiful 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