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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의 첫눈

첫눈이 오면

by Paul

눈이 왔다.
첫눈이 내렸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축하하는 축복의 눈이다.
세상을 하얗게 뒤덮는 순백의 눈은 오염된 도시 곳곳을 감싸듯 오늘 밤만이라도 펑펑 내려 온 도시가 깨끗하게 흰색으로 바꿨으면 하는 마음이다.
눈송이 하나하나는 확대하면 아름다운 결정체지만 대지에 내려 기온이 올라가면 그 모습을 잃는다.
깊은 밤, 인적이 없는 동안만이라도 바흐의 평화운 선율 'G 선상의 아리아'를 들으며 가로등 불빛에 비친 고요한 하얀 풍경을 감상하고 싶다.
어찌 보면 어지럽고 복잡한 도시에서 몇 시간이라도 평화로운 창밖의 풍경을 볼 수 있다면 그 이유만으로 잠시나마 정화된 감성을 향유하는 힐링이 되지 않을까 여겨진다.
내일 아침, 눈이 쌓이면 도로가 마비되고 눈을 치우는 분들이 고생을 하시겠지만 오늘 첫눈의 반가운 감성을 마다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자는 나이가 들어도 12월이 가장 좋다.
어린 시절엔 겨울 방학이 있었고 더욱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동심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White Christmas를 기다리는 마음은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가 꼭 같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뉴스를 마감하는 앵커가 이번에는 White Christmas가 될 것이란 얘기를 하기도 한다.
크리스마스는 종교를 초월해 온 인류의 축제이고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시즌이다.
언제부터인지 도심 번화가 아니면 구세군 냄비를 보기 힘들고 1990년대까지 연례행사로 방송과 학교에서 모금 운동을 했던 12월 불우이웃 돕기도 사라진 지 오래됐다.
뜻있는 이웃들이 판자촌 골목으로 손에서 손으로 도미노처럼 연탄을 나르던 훈훈한 모습도 이맘때면 뉴스의 단골 보도였는데 이제 TV에선 아프리카 먼 나라 돕자는 캠페인만 1년 내내 방송을 한다.
하기야 가난한 이들을 돕는 시즌이 따로 없겠지만 기성세대에게는 추운 12월이면 고개를 드는 추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시절 초등학생들은 미술 시간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었고 부모님께 드릴 사연도 함께 썼다.
신자가 아니어도 자정미사와 자정예배 시간에 맞춰 과자 선물을 받으러 가는 어린아이들이 많았고 성당과 교회 강당이나 마당에서는 엄마들이 모여 성탄절 파티 음식을 준비하셨다.
그 당시 성탄 파티 메뉴는 대형가마솥에서 끓인 해장국이나 잔치 국수였고 잘 삶은 돼지고기 수육은 빠지지 않았다.
옛날에는 자정 12시에 맞춰 미사나 예배를 올렸는데 필자가 어릴 때는 10시에 미사를 드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명동 성당 외에는 10시에 하는 교회가 대부분이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지만 20세기에 거리에서 항상 들려오던 캐럴은 들리지 않고 도심 번화가를 장식하던 크리스마스트리는 백화점이 아니면 볼 수 없다.
한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고 국민들의 Life Style 은 이미 선진 시민이지만 갈수록 예전의 사람 냄새나는 따뜻한 정서는 잊히고 있다.

사는 게 힘들면 추억도 낭만도 사그라지는 것은 당연한 까닭에 높은 물가 속에 사람들의 정서도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네 모습이다.

가정의 모습은 변한 지 오래고 그나마 크리스마스 선물은 상품권이 최고인 시대이며 크리스마스 카드 대신 문자가 그 몫을 하지만 성탄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은 신자 아니면 젊은이들이다.


이 밤 White Christmas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흰 눈이 쌓이길 기대해 본다.

온갖 세속의 궂은 것들을 잠시나마 가려주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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