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미군은 마샬군도 비키니 아일랜드에 원폭실을 감행한다.
폭파 실험을 위해 원주민 176명을 2년 후 다시 올 수 있다고 회유하고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 섬에 돼지와 양 떼를 풀고 섬 주위에 2차 대전에 획득한 일본 군함 120척을 띄운 후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 폭탄의 1200배 위력의 원폭 실험을 감행했다.
원폭 투하 후 비키니 아일랜드의 모든 생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섬 근처에 있던 120척의 군함은 모두 형체도 없이 파괴됐으며 근처의 3개의 섬도 사라져 버렸다.
그 후 20년 뒤 미국은 비키니 섬에 원주민을 다시 이주시켰으나 방사능 유출로 인해 사람들은 이름 모를 병으로 죽고 병들어 갔다.
UN의 합의 하에 감행된 핵실험은 세계 최초의 공개 핵실험이었고 그 피해로 인한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에 대한 국제 재판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120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21세기 최후의 낙원으로 불리던 세계에서 7번째로 작은 나라 '비키니 아일랜드'는 그렇게 미국의 핵실험으로 인해 멸망했다.
그 무렵 1946년 7월 5일 프랑스 디자이너 루이 레이니는 획기적인 패션은 원자폭탄과 같은 센세이션을 불러올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착안 비키니 아일랜드의 이름을 따서 비키니 수영복이라는 이름으로 패션쇼에 공개했다. 수영복이 최초로 공개되자 브라와 팬티만 입은 수영복은 당시 세계를 경악하게 했으며
교황 비오(갈바오) 12세는 비키니 패션은 죄악이라고 비난을 했다.
교황이 비난을 하자 유럽 가톨릭 국가에서는 비키니 착용이 금지되었고 너무나 충격적인 노출 패션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입지 않았다.
그 후 1951년 제1회 미스월드 선발대회에서 비키니 패션이 등장했지만 여론의 반발로 다시 금지됐다가 1960년 영화배우 브리짓드 바르도가 입기 시작하면서 유행이 시작됐다.
비키니의 어원은 노이즈 마케팅으로 탄생한 이름이고 여성의 미를 강조한 가장 선정적인 패션이지만 비키니 아일랜드의 비참한 역사가 함께 숨어있는 아이러니한 패션이다.
유럽 해안에서는 뚱뚱한 몸매에도 비키니를 입은 여인을 종종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