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이 주는 기쁨

2025.07.12

by 여전히

지금까지 걸었던 거리를 분석해 본 결과 10km까지는 아무 무리가 없고, 20km부터 통증이 조금씩 시작되며, 25km가 넘으면 과부하가 온다. 이때부터는 내 다리가 아니며 내 발이 아니다. 생각하는 에너지조차 쓰기 싫어 어떤 생각이 나더라도 생각하기를 포기한다. 그러다 보면 멍해지고 발바닥이 길 위에 붙어서 가는 것만 같다.

그리고 오늘은 30km를 걸어야 하는 날이다. 비장한 마음으로 아침부터 여기저기 파스를 붙이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애석하게도 마음을 다잡았다고 해도 몸이 따라 주진 않는 것 같다. 여전하게 20km가 넘자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때 푸엔테레이나에서 처음 인사했던 어느 한국분과 마주쳤다.

그는 나보다 하루 뒤부터 걷기 시작한 순례자였다. 지금까지 짊어지고 살았던 것들을 내려놓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순간에 행복을 느끼며 걷고 싶다고도 했다. 그리고 본인을 찾고 싶다고 했다. 많은 순례자들이 그런 말을 했다. 나를 찾고 싶다. 내가 누군지 알고 싶다. 그들이 말하는 ‘나’란 무엇일까. 그런 생각이 들며 그와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그에겐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다. 나는 무교이지만 종교를 가진 사람과 하는 대화가 재밌었다.

그렇게 대화를 하다 보니 오늘의 도착지인 나헤라에 도착했다. 신기했다. 10km 어떻게 가나 했는데 축지법을 쓴 듯 도착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다른 이와 동행 없이 걸었었다. 타인과 대화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굳이였다.

그러나 알게 되었다. 길 위에서 낯선 이와 대화하고 생각을 나누고 지금 이 순간을 공유하는 것 또한 순례길이 줄 수 있는 기쁨임을. 아, 이것도 순례길의 묘미구나.


<오늘의 기록>

이동 도시 logrono 4:01 -> najera 12:13

거리 31.4km

걸음 50.458

내일도 부엔까미노.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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