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라가 좋아지는 아주 짧은 인연

2025.07.11

by 여전히

왓츠앱의 계정복구를 위해 인증문자를 받아야 했다. 현재 핸드폰은 일시정지 상태로 문자수신은 당연히 받을 수 없었다. 검색을 해보니 로밍 문자수신만 신청할 수 있는 요금제가 있다 하여 통신사 챗봇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원은 문자수신만 되는 요금제는 장기정지 상태에서만 가능하고 나는 일시정지 상태라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른 방법이 없겠냐 물어보자 일단 일시정지부터 해제하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겠다 했고 일시정지를 해제한 후 부푼 마음을 안고 다시 왓츠앱에 들어가 계정 인증을 시도했다. 그러나 한 시간이 넘도록 문자가 오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만약 이번 순례길을 끝으로 한국에 들어간다면 나는 왓 츠앱 인증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숙소는 계속 무니시팔을 갈 생각이었으므로 따로 예약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례길 다음 여정으로는 6개국이 예정되어 있었다. 유럽에서 카카오톡처럼 이용하는 메신저 없이 다니는 건 무리였다.

다시 챗봇상담을 신청했고 상담원은 네트워크 재설정을 하라고 하였다. 아, 이제는 되겠지. 핸드폰이 꺼졌다 켜졌고 그렇게 깡통이 되었다. 오렌지 이심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핸드폰은 아무 통신도 잡지 못했다. 이럴 수가. 여기는 스페인의 어느 시골길. 이제 핸드폰으로는 사진 찍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고 나는 국제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막막함도 잠시. 나는 그럼에도 걸어야 했다. 머리가 너무 복잡했지만 그래도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까미노 닌자의 빨간 길을 따라 오늘의 종착지까지 도착하였고 도시에 들어서자 뒤따라온 순례자들을 만났다. 다행히 그분들의 도움을 받아 공립 알베르게까지는 여차저차 도착하였다. 하나 더 다행인 것은 오늘의 종착지가 나름 큰 도시인 로그로뇨였다. 알베르게의 와이파이를 이용해 유심칩 파는 곳을 알아보았다. 있었다. 올레!

5시 오픈 시간에 맞춰 보다폰을 갔다. 가게의 입구에서 만난 아주 환한 웃음을 짓던 그녀. 내 앞에서 먼저 문을 열고 나를 매장 안으로 반겨주었다. 그녀는 보다폰 직원이었고 나를 의자까지 안내해 주었다. 팸플릿에 보인 유심 중 하나를 선택했고 그녀는 알겠다며 내 여권을 가져갔다. 그렇게 한참 후, 다 됐다며 스페인어와 함께 나에게 유심을 건넸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걱정 말라는 말 같았다. 나는 그녀의 환한 미소에 이미 마음이 어느 정도 놓였다. 유심이 정상으로 작동되는지 확인했고 그녀는 박수를 쳐주며 잘 가라 손인사를 해주었다.

보다폰을 나서자 오늘 하루 동안 힘들어했던 과정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해결됐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스페인이 너무 좋아졌다. 그녀가 끝까지 웃으며 나를 배웅해 준 것에 너무 감사하다.

스페인 유심은 개통하려면 핸드폰 시작할 때 핀번호를 꼭 입력해야한다.


<오늘의 기록>

이동 도시 Los Arcos 3:57 -> Logrono 12:13

거리 35km

걸음 57.110

내일도 부엔까미노.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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