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9
오늘을 말하기 위해선 어제의 저녁밥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번 순례길을 준비하며 했던 고민 중 하나는 식사였다. 나는 요리에 흥미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귀찮아하는 편이다. 순례길에서 외식만 하기엔 비용이 부담되고 그렇다고 항상 해 먹자니 귀찮음과 용량의 이슈도 생겼다. 그래서 출국 뒤 지금까지 간단히 끼니를 때울 수 있을 정도만 먹었더니 속이 허했다. 어제는 든든히 먹으리라 다짐하고 마트에 장을 보러 갔고 마침 눈에 삼겹살이 딱 들어왔다. 소분되어 있던 삼겹살 한 근과 상추와 1.6유로짜리 와인을 한 병 사 왔다.
김치는 팜플로나의 아시안마트에서 하나 사뒀다. 두 개를 사고 싶었는데 작은 캔 하나에 4.3유로로 비싸서 한 개밖에 사지 못했다.
삼겹살을 굽고, 상추를 씻고, 와인을 따르니 든든한 한상이 차려졌다. 삼겹살에 와인을 마시니 며칠간 주전부리에 맥주를 마신 것과 차원이 다르게 맛있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 쭉쭉 들어가는 건지. 어느새 한 병이 끝나버렸고, 시간은 7시밖에 되지 않았었다. 이대로 술이 깨면 오히려 잠자는데 설칠 것 같아서 한 병을 더 마시기로 마음먹고 다시 마트를 다녀왔다. 그랬으면 안 됐는데 말이다.
아침에 눈을 떠 술기운에 걷기 시작했다. 평소에 숙취가 없는 편인데도 대미지가 누적되어 있어서 그런 것인지 걸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오늘은 21km만 가면 된다는 생각에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며 걸었다. 곧 해가 떴고 술이 깨면서 졸리기 시작했다. 몸이 힘든 것보다 졸리니까 정말 걷기가 힘들었다. 더군다나 오늘의 풍경은 지난 4일보다 훨씬 재미가 없었다.
어쩌면 한국의 시골길 같은 느낌도 들었다. 길에 큰 나무가 없어 그늘이 적었는데 바람도 불지 않으니 무척이나 더웠다. 그래도 해바라기밭은 예쁘더라.
어찌어찌 걷다 보니 오늘의 종착지인 에스테라에 도착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자만하지 않기로. 내일의 나를 위해 오늘의 나를 아껴놓기로.
<오늘의 기록>
이동 도시 푸엔테레이나 5:47 -> 에스테라 13:11
거리 25.8km
걸음 42.849
내일도 부엔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