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비용

2025.07.15

by 여전히

산티아고 순례길 일정 중 세 번째 30km를 걷는 날. 30km를 걸으면 숙소에 도착해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이런 날 공립 알베르게를 가면 도착해서도 쉬는 것이 쉬는 게 아니다. 샤워실을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눈치싸움을 해야 하며, 빨래를 널어두는 공간에서도 내 자리를 부리나케 찾아 나서야 한다. 그래서 오늘은 사립 알베르게를 예약해 놨다.

20km 넘게 걸으니 슬슬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그때 한국인 한 분을 만났다. 벌써 5번째 까미노라 하셨다. 5번이나 오게 된 매력이 무엇이냐 물으니 산티아고가 자꾸 본인을 부른단다. 순례길이 끝나고 반년이 지나면 산티아고에서 오라고 손짓한단다. 그렇게 2019년부터 시작해서 20년도, 23년도, 24년도, 그리고 올해 5번째 오셨다고. 23년에는 코로나 때 못 왔던 인파들이 전부 몰려서 알베르게가 예약이 전쟁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여유로워서 좋다고 하셨다. 요즘 걸으며 나도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었다. ‘생각보다 사람이 없다.‘ ’ 생각보다 한국사람 없다.’

그래서일까. 오늘의 숙소도 우리 일행만 쓰게 되었다.

10인실에 2명만 쓰자 2인실 마냥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이 알베르게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 더 있었는데 스페인 가정집을 호스트가 직접 개조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집이 정말 예뻤다. 체력이 되었다면 저 탁자에 앉아서 맥주 한잔 했을 것이다. 그러나 30km를 걸어온 나는 빨리 눕고 싶었다. 저녁을 대충 먹곤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드는 생각 하나.

오늘 이렇게 2인실처럼 쓰는데 내일 굳이 2인실을 잡을 필요가 있을까?

내일은 부르고스를 가는 날이다. 계속 도미토리만 다녔기에 편하게 쉬고자 부르고스에 호스텔을 예약해 놓았다. 특히 반신욕이 너무 하고 싶어서 욕조가 있는 방으로 골라놨다. 그런데 방값이 54유로였다. 공립 알베르게는 10유로면 되기에, 오늘도 2인실처럼 썼기에, 내일 54유로나 주고 잘 필요가 없음을 느꼈다. 나는 부킹닷컴을 들어갔고 수수료 무료로 취소요청을 했다. 여기까지만 했어야 했다. 그 밑에 취소하기 버튼이 보였는데 혹시나 해서 눌러보니 수수료 안내가 안 뜨는 것이다. 돈을 아끼겠다는 욕심에 취소하기를 눌렀고 그 취소하기 버튼은 모든 숙박비용을 지불하고 취소하는 버튼이었다.

아, 멍청이. 화사의 멍청이 노래가 허공에 맴돌았다. 너는 멍청해 야이야이야이야~

부킹닷컴에서도 나의 사정을 설명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왓츠앱으로도 한번 더 보냈지만 호스텔에서 답은 없었다. 10분 동안 상황을 부정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럴 때 내가 쓰는 방법은 정신승리였다. 8만 원 정도에 교육 잘 받았다. 다시는 이런 실수하지 말자는 개뿔. 너무 아깝다. 8만 원이면 장장 하루치 비용을 날린 거다. 그러나 누굴 탓하리. 답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오늘의 기록>

이동도시 Belorado 4:30 -> Atapuerca 14:10

거리 31.3km

걸음 44.017

내일도 부엔까미노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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