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6
자고 일어나서 왓츠앱부터 확인했지만 부르고스의 호스텔에선 연락이 오지 않았다. 부킹닷컴에서도 호스트에게 무료 취소 요청을 해놨다는 알림 외에도 어떤 메시지도 없었다. 정말 포기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출발 전 이 생각을 떨쳐내지 않으면 오늘 하루를 망칠 것 같아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80만 원 보단 8만 원이 싸다고. 외식 한번 안 하면 된다고.
정신승리 끝.
부르고스를 향해 출발했다. 어제부터 걸으면서 느낀 거지만 숲길이 참 예쁘다.
그간 보리밭도 예뻤는데 역시 초록색을 보니 눈에 정화가 된다. 오늘은 일출도 특히 예뻤다.
일출을 뒤로하고 한참 가다 보니 뒤에서 누가 헬로를 외친다. 뒤돌아보니 프랑스 할머니다. 요새 계속 길에서 마주치기에 이젠 얼굴만 봐도 반갑다. 그녀는 오늘이 마지막이라 그랬다. 부르고스에서 프랑스로 들어갔다 내년에 다시 부르고스에서 산티아고까지 걷는다고 했다. 유럽에 산다는 게 새삼 부러우면서 내일은 이 길에서 인사를 못할 생각을 하니 서운해졌다. 서로의 까미노를 빌어주며 우리는 작별인사를 했고 그녀는 앞서 걸어갔다.
숲길이 끝나자 작은 도시가 하나 나왔다. 바르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걸었다.
부르고스는 꽤 큰 도시였다. Villafria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부르고스로 진입했고 거기서부턴 부르고스 도심까지 일직선으로 걸으면 되었다. 도시길이라 지루함을 견디며 걷고 있는데 한 번 더 뒤에서 인사가 들렸다.
올라!
벨로라도의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마드리드에서 오셨다는 부부였다. 당시 알베르게가 아직 체크인 시간이 안 돼서 그 부부에게 가방을 봐달라고 부탁해 놓고 슈퍼를 다녀왔었다. 체크인도 나란히 했기에 침대 배정을 옆으로 받았다. 그 알베르게의 콘센트는 내가 가지고 있던 콘센트가 맞지 안 났다. 내가 헤매고 있자 여자분께서 본인의 충전기를 빌려주셨었다.
올라 소리에 뒤돌자 부부가 환희 웃으며 걸어왔다. 이 부부도 부르고스를 끝으로 마드리드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리고 내년에 다시 부르고스에서 레온으로. 그 후년에 레온에서 산티아고로. 3-4년에 한 번씩 전체구간을 걸으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다 말했다. 우리는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며 작별 인사를 했다.
같은 날 같은 인사를 다른 사람에게서 받으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왜 처음 시작이 같으면 끝도 같다고 생각했을까. 아마 길에서 인사했던 모든 이와 같이 산티아고를 도착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일 다시 걷는 것처럼 오늘 보던 이의 얼굴을 내일도 보고 싶었나 보다. 인사 하나로 유대가 쌓이고, 작은 친절로 교감이 오가는 날이 살면서 없어진 지 오래라 더 마음에 와닿았나 보다. 이제부터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들과의 만남이 깊이 남아 다음 만남이 더 두근거렸다.
<오늘의 기록>
이동 도시 atapuerca 5:43 -> burgos 11:37
거리 24.5km (공식적으론 20.1km)
걸음 39.135
내일도 부엔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