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21
원래는 마을 입구에 있는 사립알베르게를 가려했다. 넓은 마당이 조성되어 있어 휴양지에 온 것 같다는 리뷰를 봤었기에, 샤워 후 여유를 느껴보고자 선택했다. 대신 주방이 없었다.
오늘의 도착지는 베르시아노스로 이 마을을 가기 전에 사하군이라는 큰 마을을 지나간다. 두 마을은 11km 정도 차이가 나지만 할 수 없이 사하군의 디아에 들러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까지 준비했다. 바게트, 요거트, 샐러드, 닭가슴살 그리고 과일까지. 꽤 무거운 짐이 되었지만 외식하자니 하루 예산이 초과되어 장을 보고 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나는 걸으면서 도착지 마을의 정보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오늘도 어김없이 검색을 해보는데, 어라? 도착 마을에 도네이션 알베르게가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저녁과 조식까지 준다는 것이다. 순간 고민이 되었다. 이미 사 온 음식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나 고민은 순식간에 끝났다. 기부금을 10유로 낸다고 치면 10유로에 숙박, 저녁, 아침까지 준다는데 이건 못 먹어도 고다. 결국 도네이션 알베르게로 결정했다.
이 알베르게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식사를 준비하고 다 같이 치우는 문화였다. 내가 맡은 담당은 그릇에 커트러리를 올려 식탁으로 세팅하는 작업을 했다. 오늘은 33명이 함께 먹는단다. 33개의 앞접시를 만들었다. 한쪽에서는 식사가 준비되고 있었다.
애피타이저로 샐러드, 본식으로 토마토카레, 디저트로 푸딩이 나왔다. 커스터드 크림같은 맛에 비스킷이 하나 들어가 있길래 무엇인지 궁금해 물어보니 푸딩이란다. 아주 맛있었다.
그런데 이 알베르게를 오기로 결정한 이후부터 계속 짜증이 났다. 장을 보기 전에 알지 못해서 난 짜증인가, 했더니 그건 아니다. 오늘 먹지 않아도 가지고 다니면서 먹으면 되었으니까. 혹시 다 같이 준비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그런가, 했더니 먹고 나서도 계속 이 모양이다. 스스로에게 계속 물었다.
도네이션이라고 하니 말 그대로 기부니까 ‘돈을 안내도 되는 거 아닌가?’ 하는 합리화를 계속하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서 그랬던 거다. 하루 30유로의 예산을 잡고 걷고 있기에 숙박비를 저렴하게 내면 먹는 것에 여유가 생겼다. 걷는 게 힘들다 보니 먹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 이런 내가 별로인데도 ‘끝까지 걸어야 하니까’라는 핑계를 댄다. 그래서 오늘 참 짜증이 났다.
<오늘의 기록>
이동 도시 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5:33 -> bercianos del real camino 12:28
거리 25.5km (공식 23.2km)
걸음 40.415
내일도 부엔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