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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무개 Jun 06. 2024

이도 저도 모르겠다

   몸의 이곳저곳이 자주 고장 나버리는데 회복은 더디다. 통증은 부위를 막론했고 그 움직임 또한 점점 입체적이어졌다. 단순한 욱신함이 아니라 지릿지릿한 전율 그리고 풍부한 공간감을 동반했다. 부위마다 베이스가 우수한 앰프를 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제는 이곳이 아팠는데 오늘은 또 다른 곳이 아팠다. 오전과 오후가 달랐고 매일매일 위치를 옮겨갔다. 하루 한 군데에서만 반응이 오길 바랐지만, 종종 이곳과 저곳 또 신생 부위에서 다양한 통증을 한 번에 느끼기도 했다. 나를 침략시키고자 온 나라에서 들고일어나는 것 같아 속수무책이었다. 견딘다는 행위를 포기하고 싶을 만큼 지쳤다. 준비되지 않은 채 나이 드는 것은 참혹하다고 생각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나는 자살할 것이었다. 이것은 분명했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과도 같았다. 한 번의 의심 없이 스스로 생을 마감할 것이라 여겼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먹고 싶은 것을 참지 않았고,  속이 허하고 머리가 복잡하면 술을 마셨다. 졸음이 오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잠을 잤다. 몸을 움직여야 할 때에도 드러누웠다.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막연한 공포에서 자주 회피하였고, 돈을 모아야 할 때에 더 많은 돈을 사용했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지 않았고 잘못된 방향으로 내리막 타는 자신을 바라보기만 했다. 외면했다가 더 맞을 수도 있겠다. 그리하여 나는 망가졌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이렇게 대충 시간을 보내다 마흔이 도래하기 전에 죽을 것이었므로 바락바락 참고 인내하고 애쓰고 최선을 다할 이유가 없었다.

    최근 들어 계속해서 아팠다. 자꾸 아프니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다. 궁지에 몰리니 되려 이대로 죽어버리면 너무 비겁한 것은 아닐까, 자연적인 죽음을 맞아야 옳지 않을까, 무언가 노력해 본 뒤 죽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고문에 가까운 희망을 품었다. 혹여 이 생각이 달아날까 옴짝달싹 못하게 꼭 붙들었다. 그래서 더 아픈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꾸만 삐져나오는 욕심을 붙잡느라 나는 지금 더 많이 앓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조금 덜 수고로운 희망의 세계를 바랐다. 살고자 하는 욕망에 애원하는 듯한 나의 모습은 다소 애처로웠다. 어젯밤 조금 울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미치자마자 눈가가 뜨끈해졌다. 지난 몇 달간은 이상하리만치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젠 그냥 메마른 사람이 되어버렸나 했다. 그 누구도 마른 샘에 기대를 품지 않듯 감정이 아무리 요동쳐도 눈물을 흘릴 생각조차 못했다. 그러나 어제 나는 불현듯 울음에 대해 생각했고, 울컥하고 터져나오는 눈물을 연신 닦아냈다. 눈주위에 느껴지는 열감이 생경했다. 무엇이 눈물샘을 틀어막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뇌에서 신호를 보내지 않았던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 더는 눈물로써 해결되는 것이 없음을 모르는 새에 알아차렸는지 모르겠다. 그걸 잘 알아도 눈물을 틀어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불 꺼진 밤에 쓸쓸히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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