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친구가 6년 전 얘기를 끄집어냈다. 끄집어낼 만도 했다. 그는 내게 미안하단 말을 듣고서 곪은 상처를 째고 싶었던 것이다. 오직 미안하다 한마디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난 내 과오에 대해 사과를 세 차례 했다. 하지만 찝찝한 사과였다. 연애프로그램을 그렇게나 많이 보고, 이혼 관련 프로그램을 보며 “그냥 닥치고 미안하다 해! 존심 부리지 말고!” 라며 성을 내던 나는 결국 그 존심 부리는 남자친구가, 남편이 되었다. 사과만 했으면 될 것을 끝까지 자존심 세우다가 미안하단 말을 뱉어냈다. 이런 멍청한 짓은 왜 하는 걸까.
내 논리는 이렇다.
1. 미안하단 말의 무게가 커서 아무렇게나 쉽게 내뱉어지지 않는다
2. 미안하단 말 따위로 잘못을 퉁치고 싶지 않다
3. 진심이 담기지 않은 미안하단 말이 더 싫다
개논리다.
상대가 기분 나빴다 하면 그 자체로 미안할 줄 알아야 하며, 그 기분 나쁨에 대해 논리로 따지고 드는 자체가 멍청한 짓이다. 그냥 인정하고 다음부터는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말이 왜 그렇게 자존심이 상하는지. 이 팍팍한 사회에서 나를 아끼고 걱정해 주는 주변사람들에게 왜 나는 더욱 박한 건지…
‘너도 그랬잖아, 너는 뭐 순결한 피해자인 줄 알아? 나도 너한테 상처받았는데 그냥 일일이 따지고 들기 피곤해지니까 적당히 넘겼고, 넘기니까 그냥 넘어가지는데 너는 왜 하나하나 따지고 드냐…’는 생각부터 떠오르는 것이 정말 못났다 싶다. 오늘도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