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 들뢰즈의 시간성과 교차하여.
1. 존재론과 언어
<요약>
예술은 근본적으로 죽음과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려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집트의 미라나 선사시대의 조형물은 모두 외관을 보존하여 생명을 지속시키려는 마술적 장치였으며, 이는 예술의 기원적 기능을 잘 보여줍니다.
이후 회화는 정신적 실재를 표현하려는 열망과 외부 세계를 충실히 복제하려는 심리적 욕망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고, 르네상스의 투시법 발명은 이러한 긴장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바쟁은 이를 서양 회화의 원죄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진의 등장은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한 기계적 재현을 통해 리얼리즘 욕구를 근본적으로 충족시키면서, 회화를 사실적 재현의 의무에서 해방시켰습니다.
사진은 시간을 정지시킨 흔적으로서 현실을 신뢰성 있게 보존합니다.
영화는 여기서 더 나아가 순간을 고정하는 것을 넘어 변화 자체를 기록하며, 시간 속에서 리얼리즘을 완성합니다.
결국 바쟁에게 예술의 역사는 리얼리즘, 곧 유사성의 역사라 할 수 있으며,
사진과 영화는 이 욕망을 궁극적으로 충족시키는 동시에 회화의 미학적 자율성을 회복시켰고,
영화는 새로운 언어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바쟁의 시선>
바쟁은 영화를 기록의 매채로 보고있는것같습니다.
실재하는 시간의 흐름을 뚝 떼어 보존하는, 복제의 예술로 말입니다.
하지만 바쟁의 의견에 따르면 현상의 복제는 단지 모사에 그치지 않습니다.
현실이 영화속에서 기계적으로 복제될 때, 세계는 단지재현되는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변모합니다.
관객은 그 과정을 통해서 세계가 스스로 현전하는 순간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견>
영화를 해석하는 주요한 축을 시간성으로 결단하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은 현상을 이해하는 거대한 잣대이며, 바쟁은 이 도구를 통해 영화를 리얼리즘의 차원에서 규정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들뢰즈적 시각에서 본다면 영화는 단지 리얼리즘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시간은 선형적으로만 파악되지 않으며, 영화는 오히려 그 선형성을 파괴하고 변형할 수 있는 창조적 매체가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영화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그 자체로 현현하는 시간-이미지를 생산하는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관객은 이러한 시간적 재창조를 통해 새로운 사유를 이어 나가게 됩니다.
물론 영화의 플롯이 시간적 순차에 따라 진행된다고 해서, 영화 전체가 시간적 리얼리즘에 갇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시간의 역사성은 해석의 층위에 속하는 것이지 단순히 표현의 영역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감독과 관객이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배열하며, 재창조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