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영화리뷰

영화<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리뷰

아버지가 둘인 고명 딸 오이디푸스는 누구를 죽여야할까.

by 대상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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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액션 스릴러와, 블랙코메디라는 장르적 재미를 아낌없이 보여줌과 동시에


실패한 이념과 구조화된 억압 사이에서 다음 세대가 겪는 고통과 재정의된 투쟁의 의미를 심도 있게 언급해낸 내적으로 외적으로 탁월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16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통해 혁명의 좌절을 목격하고, 그 유산을 짊어진 딸 '윌라 퍼거슨'의 서사는


구시대의 폭력적 낭만을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할 현대 사회의 숙제를 은유하며


관객들에게 즐거운 여운을 남긴다.



1. 실패한 아버지들, 그리고 변주된 오이디푸스 구조


영화는 세대 간의 투쟁과 단절을 핵심 구조로 삼는다.


16년 전의 '전쟁'이 퍼피디아와 록조로 대변되는 이념적-물리적 대결이었다면,


현재의 '전쟁'은 그 이후 더 교묘해진 형태의 억압에 맞서는 생존에관한 전투다.


특히, 이 영화가 채택한 오이디푸스 구조의 변주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딸이 아버지를 직접 극복(살해)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대신, '아버지가 딸이 아닌 더 높은 질서에 속한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결말은 투쟁의 주체와 방식이 변했음을 선언한다.


폭압의 상징인 록조는 윌라의 손이 아닌, 정체불명의 정치집단이 상징하는 체제 내부의 작용에 의해 독살된다.

윌라는 살아남았지만 넘어서지 못했다. 그녀는 폭압의 몰락을 목격하고 그 유산으로부터 생존한 자로 남는다.


불살라지는 록조의 시신을 보며 느껴지는 감정은 통쾌함이 아니다. 악역의 이 찝찝한 모양새로의 퇴장은


다음 세대가 넘어서야 할 벽은 특정 인물이 아닌, 정체성조차 불분명한 시스템임을 명확히 한다.



2. '퍼피디'의 실패와 '윌라'의 혼종성


이전 세대의 투쟁가인 퍼피디아 비벌리 힐스는 이념적, 젠더적 탈피를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한 시대의 상징으로 남는다.


그녀는 여성성을 버리고 남성적인 폭발과 지배적 욕망을 통해 체계로부터의 탈피를 시도했지만,


이는 체제의 존재를 전제한 '탈선'일 뿐 억압의 방식을 되풀이한 가장에 불과했다.


그녀의 마지막 편지는 통제되지 않은 폭발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없음을 고백한다.


반면, 딸 윌라 퍼거슨은 이전 세대의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한다.


그녀는 치마 위에 가죽 자켓을 걸치고, 가라데와 댄스파티를 병행하며, 인종과 성별을 초월한 친구들(논바이너리 포함)과 어울린다.


그녀의 정체성은 금발 백인 군인(생부 록조)과 금발 백인 테러리스트(양부 밥)라는 극단적인 이념과 폭력의 유산을 동시에 물려받았음에도, 어느 한쪽에 귀속되지 않고 다중적이고 혼종적인 정체성을 형성한다.


윌라의 이러한 태도는 '옳고 그름'의 단정적인 판단을 넘어, 포용과 공존을 통해 구세대의 균열을 극복하려는 다음 세대의 움직임을 대변한다.



3. 권력 서사의 해체와 욕망의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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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퍼거슨 역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캐스팅한 것은 감독의 의도를 유쾌하게 보여주는 연출적 장치다.


만약 이 배역을 톰크루즈가 맡았다면 어땠을까. 브래드피트였다면 또 어땠을까?


영화는'권력 있는 남성이 딸을 구하는 이야기'라는 전통적이고 가부장적인 서사로 변질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약물 중독과 무기력에 빠진 밥은 구시대 영웅의 실패를 상징하며, 아버지의 무능력이야말로 윌라가 독립적인 투쟁의 주체로 거듭나야 하는 필연적 배경이 된다.


이 영화는 강력한 상징계적 질서의 억압 밑에 자리한 더 큰 공백에 주목한다.


이 공백은 테러리즘, 성적 충동과 같은 폭력적 욕망으로 나타나며, 록조와 퍼피디아가 바로 그 욕망의 형상들이다.


이 폭력과 성적 욕망은 결국 체제가 낳은 억압의 산물이다. 영화는 이 둘을 통해 세대, 성, 권력, 욕망이 복잡하게 맞물리는 방식을 폭로한다.



4. 끝나지 않은 투쟁: 다음 세대의 짐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새 시대를 살아갈 윌라에게 희망을 건네는 동시에, 구시대가 미처 청산하지 못한 짐을 떠넘기는 듯한 텁텁한 감정을 남긴다.


윌라는 자신을 위협한 생부와 지키려 했던 양부, 부재한 어머니라는 복잡한 과거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 '다음 전투(Another Battle)'에 직면한다.


윌라가 넘어서야 할 것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억압이 낳은 욕망의 잔재와 더불어 시스템 자체가 만들어낸 교묘하고 해체된 형태의 억압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하나의 전투가 끝났다고 해서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다.


투쟁은 계속되며, 윌라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전선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무기로 싸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다음 투쟁의 윤리'에 대한 가장 첨예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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