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영화리뷰

영화<욕망blow-up>리뷰

by 대상c
blowup2-poster.jpg 포스터가 좀 야한영화같습니다. 훼이크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 자체가 훼이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적절한 포스터인것같습니다.

리뷰를 수차례쯤 썼다 지웠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 패배했습니다. 저의 언어로는 해당 영화를 만족할만큼 설명할 수 없을것같습니다.

인식론에대한 이야기이고, 영화라는 매체에대한 예술론과 관련된 영화입니다.



주인공 토마스는 자신만만한 사진사입니다. 시선의 권력자라도 된 양 모델들을 윽박지르고,

공원을 즐기는 커플들을 자기 마음대로 촬영합니다.


영화의 전반부까지, 그는 사진을 통해 의미를 생산해내는 창조자이며 세상의 비밀을 폭로하는 기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의 중반부를 지나, 토마스는 자신이 촬영한 사진의 한 귀퉁이에서 범죄의 단서를 발견하게됩니다.


그는 촬영된 피사체의 흐름을 짚어가며, 스스로 발견되었다 믿고있는 사진속 증거들을 암실에서 확대하고, 확대하고, 또 확대합니다.


하지만 사진을 확대할수록 의미는 모호해지기 시작합니다.


토마스가 확대한 사진의 형상은 어떠한 구체적인 형상을 그려내지 못합니다.


사건은 멀어지고 ‘증거’는 아무것도 아님으로 돌아갑니다.


이후 그가 목도하는 모든것들은 무의미의 연속입니다.


그가 알고있다 믿었던 많은 것은 거짓이었습니다.


분명히 발견되었다 믿었던 시체는 사라져있고, 촬영했다 믿었던 사진들 역시 도난당해버립니다.


그가 소유했다거나 움켜쥐었다 믿었던 것들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마침내 그는 하얀 분으로 얼굴을 덮어놓은 일련의 무리들이 허공에다 빈손으로 테니스를 치고있는 무리들을 목도하게됩니다.


허공에 테니스를 치는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서 자기들만의 규칙을 만들어냅니다.


그 합의된 규칙속에서 토마스는 어떤 소리를 듣습니다.


팡. 팡. 팡. 팡.


테니스공 주고받는 타격음이 어디선가 울려퍼집니다.

토마스는 존재하지 않는 공을 쥐어 던지며 게임에 참가합니다. 그는 이제 사진기자가 아니라 모델이되고, 감독은 연기자가 됩니다.




의미의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욕망〉은 그것이 사물의 내부가 아니라 합의를 통해 외부에서 생겨난다고 수차례 보여줍니다.


록클럽에서 기타 넥의 파편은 군중의 욕망을 점등하는 성물이 되지만, 거리로 나오자 곧 쓰레기가 됩니다.

같은 물건이 다른 세계로 옮겨지는 순간, 의미는 증발합니다.


결말의 팬터마임은 이를 결정적으로 봉인합니다. 공과 라켓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랠리는 이어집니다.


토마스가 마침내 그 게임에 참여하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테니스 소리를 듣습니다.


소리는 이미지를 보증하지 않습니다. 뒤늦게 합류해 허구를 현실로 봉인할 뿐입니다.


우리가 본 것은, 나중에서야 ‘있었던 것’이 됩니다.


그러니 감독은 어떠한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드러난 현상이 모호하므로, 감독이 촬영한 세상은 모호할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모호하다는것이 완전한 부재를 증거하지는 않습니다.


되려 모호하다는것은 어떠한것의 존재를 긍정하는 증거이기도합니다.


감독은 무의미한 이미지와 소리들을 열거하며, 의미가 지나갔다 느껴지는 그 공백의 자리를 어떻게든 재현하려 애씁니다.


하지만 그 노력의 끝에는, 텅 빈 잔디위에 테니스공 소리를 듣고있는 토마스가 우두커니 서있을 뿐입니다.


감독은 무엇을 촬영한걸까요. 나는 무엇을 본걸까요. 내가 본것은, 어떻게 만들어진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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