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소설의 주인공은 열일곱의 세실이다. 부유한 아버지 레이몽의 슬하에서,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그녀는 세상이 쉽다. 세실은, 본인처럼 방종하다 판단했던 아버지 레이몽이 절제와 질서를 상징하는 안느라는 여성과 재혼을 한다고 결심하자 크게 충격을 받는다. 안느와 레이몽이 결혼하면 세실에게 자유는 사라질것이 뻔하다. 세실은 자신의 방종을 지키기 위해 주변의 인물들(시릴, 엘자)을 이용하여 아버지 레이몽의 바람 이라는 사건을 꾸며낸다. 레이몽의 외도 장면을 마주한 세실은 결국 자살인지, 사고인지 모를 방법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세실과 레이몽은 죄책감 속에서 늘 그렇듯 방탕한 삶을 이어간다.
감상
읽고 나면 기분이 나빠지는 소설이다.
삶의 허무함과 무가치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학과 철학은 사강의 작품 이외에도 참 많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유독 사강의 작품 만큼은 기분이 나쁘다.
사회화란 본디 폭력적인 과정이다.
무분별한 사회화는 물론 지양해야할 사태이지만,
정말 대다수의 시민들은, 본인들의 생존을 위해서, 자신의 일부를 떼어내는 손해를 감내하고서 사회의 가치를 받아들이며 산다.
그리고 몇몇 철학자나 예술가들은
그러한 대중들의 숭고한 희생을, 마치 세상에대한 굴복이나 무지함처럼 얕잡아보곤 한다.
사강은 그런 문학인의 대표주자다.
사강은 '안느'를 파괴한다. 질서와 성숙을 거부하는 그녀의 삶마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인한 기생적인 자유다.
누구나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 주장하는 사강은, 자신이 파괴 이전 일자의 모습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그 근간에 타인들의 노고가 담겨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사강은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얼굴마담이었던것은 아닐까.
전쟁이후의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 들끓어오르는 해체에대한 열기를 부채질하기 위해서
사회는 방종을 예술적 천재성으로 포장하고 유통했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거부와 거절 말고는 무엇을 외쳤었나.
가장 열렬히 진보적 자유를 논했던 그녀의 삶은, 얼마나 자본주의적으로 낭만적이었던 생이었나.
나는 그녀에 빗대고싶은 한국의 걸출한 젊은 천재 두명을 떠올린다.
기형도와 이상이 그 이름이다.
기형도와 이상 역시, 삶의 허무를 얼마나 치열하게 체험했었나.
그리고 그 허무 이후에 남을 생을위해. 그들은 또 얼마나 뜨거웠었나.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깎아내며 살아와야만했던 소시민의 한명으로서
나는 사강이 아니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