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읽고
글 제목을 작가의 성함으로 했다.
에세이 한 편을 읽고 감상평을 쓰려 했는데,
이상하게 작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에세이는 글을 통해 생각이나 감정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좋은 작품 한 편을 읽은 것이다.
백수린 작가님은 ‘봄밤의 모든 것’이라는 단편 소설집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여러 편의 단편 소설은 한결 같이 잔잔한 물 위를 자유롭게 떠다니는 돛단배 같았다. 작은 파고에 출렁이지만 다시금 중심을 잡고 목적지로 나아가는 돛단배. 급히 갈 것 없이 주변을 마음껏 누리며 항해하는 그런 돛단배.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삶에서 독서 또한 여러 자극을 위해 찾았던 내게 작가님은 글을 통해 쉼을 주었다. 그 시간은 편안했고, 독서 중 자연스레 나오는 미소도 잔잔했다. 그리고 나의 일상을 생각하게 했다. 그때부터 작가에 호감을 가졌고,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바로 작가가 쓴 에세이 한 편을 주문했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 속 인물은 허구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든 인물에 작가가 투영된다고 한다. 그런 점을 염두하며 상상하던 백수린 작가와, 에세이를 통해 알게 된 백수린 작가는 많은 부분이 일치했다. 더 기쁜 것은 삶에 대한 관점이나 철학이 내가 추구하는 그것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어쩌면 좋아해서 닮고 싶은 건지도..) 여하튼 김연수, 권여선, 백영옥 작가님 등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 또 한 명을 추가할 수 있어 무척이나 기쁘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은
조용하게 작가의 지난 삶을 들려준다.
서울의 언덕이 높은 주택가에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껴 살면서 겪은 이야기.
반려견 봉봉이와의 추억들.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
들어보면 크게 비범한 상황이라 느껴지는 것은 없었지만 작가는 평범함에서 여러 가치들을 찾아냈다.
아니, 찾으려 하지 않았지만 작가에게는 밝은 눈과 열린 귀와 따뜻한 마음이 있어 자연스레 발견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 같다.
- 세상의 어떠한 것도 무가치한 것이 없다
- 우리의 주변은 늘 아름다움이 넘친다. 다만 보지 못하고 있을 뿐
- 시간은 아름다운 것들을 굽는 화로
- 나의 작은 몸짓 하나도 세상을 이롭게 하는 자양분
- 위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받는 것
작품을 읽으며 느꼈던 전체적인 분위기다.
본문 중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부분은
- 어떤 공간이 누군가에게 특별한 장소가 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오감으로 각인되는 기억들의 중첩 때문이다.
- 미래 쪽으로만 흐르는 시간은 어떤 기억들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하지만, 장소는 어김없이 우리의 기억을 붙들고 느닷없이 곁을 떠난 사랑하는 것들을 우리 앞에 번번이 데려다 놓는다.
- 우리는 슬퍼하는 사람 앞에서 수없이 많은 실언을 하고 빈껍데기 같은 말만을 건넨다.
- 내가 당신의 슬픔을 다 이해한다거나 내가 가진 슬픔에 비하면 당신의 슬픔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대신, 당신의 슬픔을 내가 똑같이 느낄 수는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당신이 혼자라고 느끼지는 않길 바란다.
5월은 가정과 직장에서 정신없이 지내는 가정의 달이다. 5월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삶을 음미하며 감사하는 마음, 아름다움을 찾는 여정, 주변을 둘러보는 따뜻한 마음 등 많은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었다. 좋은 작가님과 작품을 만나 행복한 주말을 보냈다.
* 작품에 공원을 산책하는 내용이 많이 등장했다.
이 글 또한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새소리를 들으며 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