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생각한다
요 며칠 내게 강력하게 꽂힌 메시지다.
삶은 늘 배움과 깨달음의 과정이라는데,
그 과정에서 의도적이지 않게 배움과 깨달음이 일어나는 순간이 있다.
한 번의 경험은 우연이고,
두 번의 경험은 확실하며,
세 번의 경험은 깊이 새겨야 한다.
짧은 기간에 일어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토요일 오전은 늘 가뿐하다. 일주일 중 유일하게 기상 시간을 정하지 않고 피로회복의 게이지가 모두 채워졌을 때 일어난다.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아내와 여유롭게 대화하며 오전을 보냈다.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파스타를 먹고 싶다는 아내. 아침부터 파스타는 뭔가 생각을 많게 한다. 100% 동의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난주에 아침으로 먹었던 베이글이 생각났다.
밥을 먹고 싶었던 나와 절충하여 집 근처의 트레이더스로 향했다. 아내는 치즈 스파게티, 난 빠에야.
빠에야.
처음 먹어본 음식이다. 너무 맛있었다. 해산물의 향과 맛이 꼬들꼬들한 식감의 밥알에 스며들어 있었다.
원가를 절감하여 대중적으로 만든 트레이더스 빠에야가 이 정도인데 스페인 식당이나 가정에서 제대로 만들어 먹는다면 어느 정도 일지 벌써부터 그 기대로 흥분된다. 곧 요리에 도전할 생각이다. 당분간 반복적으로 찾아서 먹을 새로운 음식이 생겼다는 것도 참 행복한 일이다.
주말 트레이더스 푸트코트는 항상 사람이 붐빈다. 좌석 또한 늘 만석이다. 운이 좋게 자리를 잡아서 아내와 식사를 즐기는 중에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께서 우리 테이블 빈자리에 잠시 앉아도 되는지 정중하게 물어보셨다. 순간적으로 멈칫했고,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당연히 괜찮다고 말씀드리며 편히 앉으시도록 음식과 짐을 한쪽으로 치워드렸다. 어르신은 고맙다고 하시며 머리를 숙여 인사하셨다.
뭔가 모르게 큰 감동이 밀려왔다. 백발의 어르신이 나이라는 사회적 기준이 주는 권위를 내려놓고 정중하게 젊은 사람들을 대한다는 것이, 상대에게 이런 감동을 줄 수 있음을 깨닫는다. 내려놓음의 정중함이 더욱 정중하게 내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 꼭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
토요일 신문이 기다려지는 것은 좋아하는 소설가의 칼럼을 읽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번 주는 '하지 않음의 미덕'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우리는 나쁜 것을 멈추는 데 인색하다. 의사가 말하길, 정확한 진단이 내려지면 몸에 좋은 10가지를 하는 것보다 몸에 정말 나쁜 한두 가지를 하지 않는 것이 더 근본적인 치료라고 한다. 발의 통증을 무시하고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자 돌아다녀 족저근막염을 얻었던 경험과 함께 위의 내용을 인용했다.
주변에 다이어트를 하는 분들을 보면 공통적으로, 섭취하는 다이어트 보조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얼마나 효과가 있고, 부작용은 없는지, 꾸준히 섭취할 경우 비용적인 측면 등을 꼼꼼히 계산한다. 하지만 다이어트란 단어 자체가 '체중을 줄이기 위해 식사를 조절하는 것'이다. 무엇을 빼고 줄어야 하는지가 더욱 중요한 것이다.
금요일 오후, 직장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몇 주 전에 취직하여 직장인이 된 학생과 학부모님께서 인사차 학교에 방문하셨다. 바쁜 삶에서 잘 지내기만 하면 감사한 일인데, 전화도 아닌 방문이라 더 감사했다. 학부모님과 담소를 나누던 중에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내용이 있었다: 학생의 인품이 너무나 훌륭하여 어린 시절을 어떻게 양육하셨는지 질문을 드렸다. 학생들과 내 자녀를 지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에서였다.
아버님께서는
"OO이는 경계선급 장애라 아들의 장애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아내와 저 모두 오래 걸렸습니다. 그 때문인지 조급했고, 아이에게 이것저것 강요하며 압박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소심하고 조심성 있는 모습도 그때의 불안이 작용한 모습이라 미안한 마음입니다. 아내와 어느 때부터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더니 아이가 몰라보게 좋아졌고, 저도 회사 내에서 업무 부담이 적은 부서로 이동하여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가졌습니다. 내려놓았던 것이 오히려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비장애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그 애는 욕심부리지 않고 자유롭게 키우고 있습니다. 하하하"
깊은 울림이 있는 말씀이었다. 말이 쉽지, 나의 가족이, 그것도 나의 자녀가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 뒤쳐지고 있다는 사실에 조급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세상의 시선과 비교, 내 소유의 자녀관 등을 모두 떨쳐내고 자녀를 향한 진정한 사랑이 깊이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세상은 가면 갈수록 더욱 쌓으라고만 말하는 것 같다. 쌓지 않으면 마치 실패자인 것처럼.
마이클 이스터는 자신의 저서 '가짜 결핍'에서 우리의 뇌가 지금 무언가 부족하다고 받아들이는 상황을 결핍 마인드셋이라고 정의했다. 인간은 결핍에 민감하도록 뇌가 발달되어 왔다고 말한다. 따라서 늘 충족된 상태를 만들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려놓음.
다이어트는 중력에 대항할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되는 것처럼, 뇌의 자연스러운 신호를 이기는 멋진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다. 세상에 대해 내가 죽고 본질을 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더욱 깨어서 지내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