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주간에 발견한 아름다움들
여러 생각이 많아 차분히 보냈던 지난 한 주였다.
듣기와 말하기를 잠시 내려놓고, 바라보고 느끼며 생각하기를 반복했다. 어느 도서의 제목처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한 주를 뒤돌아보며, 일상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의 모습들을 생각한다. 필히 멈추어야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볼륨을 낮추니 더 잘 보게 됐던 아름다움의 순간들을 써 본다.
직장 텃밭에서 기르는 오이가 무럭무럭 자란다. 하루가 다르게 키가 큰다. 탐스러운 열매인 오이는 차치하고 가장 눈에 띄었던 '오이손'. 긴 줄기를 지탱하기 위해 잡을 무엇인가를 애타게 찾는 것만 같은 귀엽고 작은 손. 귀여움 이면의 애절한 생존의 본능. 살아가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아름답다. 그 속에 써나가는 각자의 서사는 세상이 정한 기준에 적용받지 않는다. 그저 경이롭고 존경스럽다. 오이손을 통해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본다.
결혼식을 다녀왔다. 여느 결혼식과 달랐던 점은 어린아이들이 무척이나 많았다는 것. 결혼식의 컨셉은 그날의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의 생각으로 설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경건할 수도, 가벼울 수도, 길 수도, 짧을 수도, 엄숙할 수도, 재밌을 수도 있다. 이런 들 어떠하고, 저런 들 어떠하리. 결혼식은 너무도 행복한 순간이다. 내가 다시 결혼식을 계획한다면(그럴 일은 절대 없습니다. 절대란 세상에 없지만 정말 안 돼요.) 잔칫날과 같은 분위기에서 식을 진행하고 싶다. 어린아이들이 북적거리며 뛰어다니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잔치 같은 결혼식. 그런 결혼식을 토요일에 다녀왔다. 역시나 아이들이 많은 곳에는 행복이 있고, 아이들은 공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존재들이다. 아이들로 아름다워지는 풍경을 본다.
작가는 독자에게 아름다운 생각을 글로 전한다. 한 주간 읽었던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라는 책은 여태껏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울림이 컸고, 쉽게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19개의 챕터를 읽을 때마다 곱씹고 또 곱씹게 만들었다. 다 읽는데 2주가 넘게 걸렸다. 하지만 책의 리뷰를 아직 쓰지 못하고 있다. 두세 번은 더 읽어야 쓸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부족함을 느낀다. 평생 간직할 소중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났다.
늘 기다리는, 좋아하는 소설가의 이번 주 신문 칼럼 주제는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이라는 추상명사가 누군가에게 고유명사로 된다는 것이 근사한 일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16년 지기인 직장 선배님들과 22년 지기인 후배와의 만남이 더욱 감사해진다. 늘 먼저 연락을 주어 더욱 미안하고 감사가 크다. 관계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운 글로 알게 되었다.
서울의 한 특수학교 음악홀 앞에 설치된 예술 작품이다.(사진) 중국 현대 도예가인 주락경의 작품이다. 음악홀이라는 특징에 맞는 컨셉이라 생각된다. 작품이 설치된 곳이 공교롭게 특수학교에 있는 음악홀이다. 마치 세상을 향하여 조금은 다른 소리를 마음껏 내는 듯하다. 잘 들리지 않을 수 있으니, 듣는 이가 적을 수 있으니 목청 높여 소리치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내 모습이다. 무엇이 두려워 마음속으로만 삭혔던 내 목소리를 크게 뱉는다. 들리든 말든 뱉으면 되는 거다. 무엇을 발산하지도 않았는데 속이 시원하다. 뭔가 뻥 뚫린 기분이다. 이래서 그 어려운 미학을 공부하는구나 싶다. 예술의 아름다움을 가득 느꼈다.
철학자인 고 김진영 작가는 '사랑과 아름다움과 감사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지 않기'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목표로 두었다. 사랑과 감사와 더불어 이 아름다움이 얼마나 삶에 힘을 주는지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아름다움을 보는 순간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은 다른 부정적 감정이 자리잡지 못한다. 그것들이 있을 공간이 없다. 설령 먼저 자리 잡았다고 한들, 쉽게 아름다움에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다.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은 너무도 가변적이라 어느 때는 단추 구멍 같고, 어느 때는 돋보기 같다. 건강한 사유 행위가 시야를 넓히고 좁힌다.
가끔 짧거나 길게 한 템포 쉬어가는 순간이 있다. 이것이 건강한 쉼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기준이 내게 만들어진 것 같다. 주변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면 건강한 쉼의 순간인 것이라고. 고개만 돌려도 수 없이 펼쳐지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이제는 가끔 쉬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