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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 권여선

기억은 나를 만들고 그만큼 내가 된다

by 하이브라운

지난여름, 휴가철에 관련된 신문 칼럼에서 "현실에 대한 생각의 고리를 끊는 것이 휴식이고 그 방법이 독서다. 휴가지에 책 한 권 가지고 가지 않는다면 진정한 휴가라 볼 수 없다"라고 했던 말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공감하는 말이다. 쉬면서도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일상의 생각들, 고민들이 있다. 어느 때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야기 하나를 만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 의지와 관계없어서 요즘 개봉한 영화의 제목처럼 '어쩔 수가 없다'

이러한 상황을 탈피하는 것이 독서라고 말하는데, 이번 추석 연휴에는 오랜만에 소설을 읽기로 했다. 그간 철학책에 재미를 붙여서 편독을 했으나, 다른 이의 삶을 살아보는 소설로 휴가를 즐기기로 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재미를 위한 읽기라 감상을 적을 것이 있을까 고민되고, 작성해도 두서가 없겠거니 생각되지만 좋은 책을 소개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작성해보려 한다.


이번 연휴에 읽은 첫 번째 소설집은 권여선작가의 '각각의 계절'. 문학상 수상집에 실린 '사슴벌레식 문답'이라는 단편소설을 흥미롭게 읽어서 이 소설이 포함된 작가의 단편소설집을 구입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읽게 되었다.

소설집은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소설은 평론가의 짧은 요약 -무엇을 기억하는가, 어떻게 기억하는가, 왜 기억하는가, 우리가 왜 지금의 우리가 되었는지에 대한 깊고 집요한 물음- 처럼 '기억'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앞으로의 자신을 만들어갈 여정을 생각하게 한다.


소설 속 인물들이 가진 기억은 가난, 차별, 고난, 원망 등 부정적인 것들이 다수지만 결코 잊히지 않았고, 잊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기억은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 객관적인 현실은 지난날들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세상의 위선과 인생의 허무를 알아버린 지금은 오히려 그때의 기억이 그립다.


'위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연약한 인간에게 절대 선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다들 선을 위해 달려가지만, 위선은 필연적으로 나를 감싸게 된다. 정도의 차이와, 목적이 다를 뿐.

- 솔직해지자.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무엇을 기대하는지.

- 판단하고 비난하지 말자. 나 또한 피부만 다를 뿐, 속은 비슷하게 생겨먹었을 테니까.


소설집의 제목이 "각각의 계절"이다.

세 번째 단편인 '하늘 높이 아름답게'에서 주인공은 마지막에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말했다.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오면 새로운 힘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리라. 이렇게, 저렇게, 그렇게 다시 힘을 내어 살아간다.



"사슴벌레식 문답에 따르면 지난 일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따져보고 거기에 어떤 의미와 맥락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다. 지금 여기의 현실이 이와 같이 결정됐다는 사실을 돌이키거나 수정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평론가 권희철


*감상을 마치며 내 삶에 사슴벌레식 문답을 적용해 봤다. 자주 적용해야겠다.

- 삶에 고민들은 왜 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질까?

- >삶에 고민들은 어떻게든 이어져.

- 명절 연휴가 더 길면 좋지 않을까?

- >명절 연휴는 어떻게든 끝나.

-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것, 생각하는 것을 나누며 살 수 있을까?

- >어떻게든 나누며 살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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