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리듬을 되찾는 주말
곧 브런치에 가입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년이 된다. 내게는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그것은 '근육 알람'이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글 하나는 작성해야지 하는 마음이 1년간 이어져 왔는데, 딱 한번 텀을 넘기니 지체 없이 근육 메시지를 날려주신다. 맞는 말이라 뭐라 할 수도 없고, 닭가슴살이라도 보내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나의 내면 건강을 챙겨주는 '다음'이라는 회사에 감사하다.
지난 한 달, 교직생활이 15년을 넘어 20년을 향해 나아가는데, 가장 바쁘게 지냈던 것 같다. 교사가 가르치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을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의 교육의 질은 한 단계가 아니라 몇 단계는 성장할 것이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이상적인 생각이 모두 현실이 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여러 행정 업무와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며 숨 가쁜 시간을 보냈다. 2주 정도, 바쁜 기간이 아직 남았지만 근육 메시지를 받았으니 글을 쓰며 한숨 돌려야겠다는 생각이다.
직장에서 바쁜 시기를 보낼 때 좋은 점과 좋지 않은 점이 공존한다. 제한된 시간과 인원으로 많은 일들을 처리하고, '사회에서 내가 필요한 역할이 분명 있구나' 생각할 때 작은 뿌듯함을 느낀다. 학교 급식을 먹을 때, 메인 반찬을 한 번 더 담아도 당당한 그런 느낌. 밤 9시 넘어 불을 끄고 나올 때 학교에서도 별을 보며 퇴근한다는 사기업 지인들의 공격에 대한 방어 수단 확보 등.
하지만 좋지 않은 점이 삶에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느낀다. 그중 제일이 삶의 리듬과 루틴이 깨어지는 것이었다. 운동 스케줄, 신문 읽기, 독서, 글 쓰기, 산책 등. 장 시간 지켜왔던 리듬들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주말의 시간은 온전히 쉴 수 있어, 이번 주말은 '리듬을 회복하는 시간'으로 나름 정하고 보내기로 했다.
토요일 운동은 늘 여유롭다. 오전 11시쯤 헬스클럽에 가면 식사 시간과 주말의 여유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로 인해 사람이 없다. 신나는 음악을 소음 없이 들으며, 원하는 기구를 마음껏 사용한다. 몸은 그 무엇보다 정직하여 오랜만의 자극에 기분 좋은 통증으로 답한다. 근육의 회복 신호라 생각하고 즐겁게 운동했다. 브런치에서도 내 근육을 걱정했으니 첫 번째 시급한 과제를 완료한 기분이다.
어느덧 만추를 지나고 입동 또한 지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간 지나쳤던 가로수와 풍경들에서 난 왜 예쁜 단풍들을 보지 못했을까? 감각이 생각을 지배하는지, 생각이 감각을 지배하는지에 대한 혼란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다. 아내와 외식을 하고 걷는 산책길은 출퇴근 길이기도 했지만 알록달록한 단풍잎들이 아직 가을을 머금고 있었다. 마치 나를 위해 조금 기다려준 것처럼. 감사하게.
며칠 동안 쌓인 신문을 천천히 읽었다. 경주에 세계 각 정상들이 모였고, 젠슨 황은 깐부 치킨의 맛을 알아버렸다. 여러 사건 사고들 중에서 울산 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는 마음이 아프다. 나와 같은 나이대의 희생자가 있어 더욱 그렇다. 진심으로 삼가 조의를 표하며, 남은 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바쁘면 가장 쉽게 놓아버리는 것이 독서라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다. 틈틈이 짬을 내어 독서하는 것은 오랜 내공과 습관이 아니면 쉽지 않다. 가장 큰 휴식이 일상을 잊는 것이라는데, 그런 점에서 소설이 좋다. 그중에서도 단편 소설이 딱이다. 도서관에서 단편 소설 모음집을 빌려 읽었다. 뜻밖의 수확은 정이현 작가의 10페이지 정도의 짧은 이야기에 마음이 따뜻해졌다는 것. 또 한 명의 좋은 작가를 알게 되어 횡재한 느낌이다.
이번 주말 초등생 아들이 지리산을 다녀왔다. 지난 주에는 민둥산에 갔었는데. 어쩌면 산악인이 될 수도 있겠다. 산 정상에서 지은 시에는 "지리산의 예쁜 꽃들 사이로 걸을 수 있는 것이 은혜"라는 표현이 있었다.
지금 나의 삶은 바쁜 순간을 지나고 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건강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일에 집중하여도 든든하게 곁에 있는 가정이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이것 또한 큰 은혜라 생각하며 매일을 감사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