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과 '고요하고 깊게 나를 완성하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을 읽고
5일간 일본 후쿠오카와 구마모토로 여행을 다녀왔다.
지난 2년, 바쁜 직장생활을 잘 마무리한 스스로의 보상과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온 가족의 쉼을 위해 조금은 급작스레 결정하게 되었다. 9일에 방학을 하고 주말을 보낸 다음, 12일에 출발했으니 정신없었던 일상을 하루 빨리 벗어나고자 했던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알겠다.
여행 직전까지 근무와 경조사 참여로 여유가 없었던지라 이번 여행 계획은 아내가 짜기로 했다. 걱정이 안 되었다면 거짓말. 계획성 없이 그때그때의 감각과 기분에 의존하는 아내라 더욱 그랬다.
노파심에 12월부터
"계획은 잘 세우고 있어?"
"걱정 마! 이번에는 나만 따라와 봐"
연애와 결혼 기간까지 20년이 넘었지만 따라갔던 경험은 없었다. 내가 이끌었거나, 따라가다 이끌었거나 오직 두 가지 경험 뿐.
직장에 일본 여행 전문가가 있어 이것저것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뜻밖의 책을 선물 받았다.
'고요하고 깊게 나를 완성하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 - 사이토 다카시'
그렇지 않아도 이번 여행에는 책을 한 권 가져갈 생각이었고, 일본 작가의 소설이나 에세이를 챙기려 했는데, 어찌 마음이 통했는지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을 받았다.
-이제는 그만 묻고 스스로 답하자. 고독 속에서 사유의 힘을 키워야 한다.
-인생에 한 번쯤은 혼자서 도달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나를 만드는 시간
책의 표지 문구들을 봐도 타인과 관계 중심의 시간에서 벗어서 자신을 발견하고 고독을 음미하라는 내용일 것이라 짐작된다. 지금 내게 꼭 필요했던 내용들. 적절한 때에 적절한 책을 읽을 수 있음에 그저 감사가 나온다.
늘 그랬던 것처럼 여행 전날 밤에 짐을 싸는 것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빨리 일을 마칠 수 있다. 야구방망이도 챙기려 하는 생각없는 초등 아들이 잠들고서야 본격적인 짐을 쌌고, 새벽에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 일찍 나가야 할 일정이라 공항버스와 비행기에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장점까지 있었다.
잠들기 전, 본격적인 확인 작업에 들어간다. 아내를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소화하기 어려운 일정이 있으면 함께 얘기하기 위함이라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 내일 공항버스 몇 시에 어디서 타야 해? 아침 식사는 어디서 하는 거야?
- 응 내가 지금 한 번 찾아볼게. 식사는 배고플 때 주변에서 하자.
역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조금씩 불안이 밀려온다.
- 계획은 어떤 것들을 세웠어? 시간이 좀 있어서 꼼꼼하게 세웠겠네.
- 그날에 어디를 가야 하는지 정해놨어. 나머지는 상황을 보면서 움직이려고.
MBTI를 신뢰하지는 않지만 극 P의 아내와 J남편의 일상은 늘 이렇다.
- 계획 세우느라 수고 많았어. 생각했던 장소만 내게 알려줘.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첫째날-캐널시티, 둘째날-텐진, 셋째날-구마모토 시내, 넷째날-구마모토성, 다섯째날-귀국"
첫째날-명동, 둘째날-강남역, 셋째날-인사동, 넷째날-경복궁. 이것과 뭐가 다른가.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이동 중과 숙소에서 계획을 작성하기로 하고 걱정을 뒤로하며 잠에 들려는데, 아내는 벌써 숙면을 취하고 있다. 아내는 분명 장수할 것 같다. 이렇게 걱정이 없으니.
책은 스스로의 시간, 단독자로서의 시간이 단단한 나를 만들어 준다고 말한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온전한 내가 될 수 없고, 삶의 깊이를 맛보려면 어쨌든 고독이 필요하다고. 단독자로서 보내는 시간이야말로 타인이 쉽게 넘볼 수 없는 고고함을 만들어 준다고.
메이지대학 교수이자 일본 최고의 교육전문가이고 CEO들의 멘토이기도 한 저자는 젊은 시절 10년의 혼자 있는 시간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확신했다. 그러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편하게 보내거나 자신을 치유하는 시간을 갖자고 말하지 않는다. 단독자의 시간 동안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혹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키우는 시간을 좀 더 갖자고 한다. 그러면서 뇌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는 지적인 생활이야말로 누구나 경험해야만 하는 '혼자 있는 시간'의 본질이라 설명한다.
책은 혼자인 시간이 필요한 이유들과 혼자인 시간이 주는 유익들, 혼자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고, 곁에 사람이 없으면 불안을 느끼는 요즘이다. 친구가 없다고 하면 성격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물론 관계도 중요하고, 관계에 의미를 두는 사람도 있겠지만 '불안'으로 인해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내용들이고, 나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후쿠오카는 마치 국내 도시를 이동을 한 것처럼 가까웠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느낀, 춥지 않은 시원한 느낌의 겨울의 날씨가 참 좋다. 숙소로 이동하여 체크인을 하고 인근의 대형 쇼핑몰을 찾았다. 캐릭터의 나라답게 다양한 캐릭터 샵이 있었다. 구경하며 먹고, 먹으며 구경하고. 지쳐서 숙소에 들어왔다.
다음 날은 텐진이라는 지역에 가서 어제와 비슷한 구경하며 먹고, 먹으며 구경하고를 하루 종일 반복하는 일정. 낯설음이 여행의 절반이다. 특별한 것 없는 일정이지만 낯선 풍경과 먹거리들은 여행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셋째 날은 구마모토라는 도시로 이동하는 일정이다. 신칸센이 빠르고 편하지만 이동하며 풍경을 보고 싶어 고속버스로 이동했다. 승차해서 잠들었고, 하차하기 직전에 잠에서 깼으니 긴 수면과 회복을 고려한 최고의 선택이라 스스로 위로했다.
여행하며 재밌었던 것. 음식점도 특별히 알아보지 않고 갔던 우리는 긴 줄이 늘어진 식당을 발견하면 빠르게 줄을 서거나 대기를 걸어놓고 구경 후에 식사를 했는데 모두 성공적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공기를 읽는다'는 말이 있다. 주변의 상황과 분위기를 빠르게 읽고 행동한다는 의미다. 일본에 와서 공기를 읽고 행동하는 내 모습이 대견했다. 오코노미야끼, 야끼소바, 타코야끼, 데리야끼 소스 등 야끼 이름이 붙은 음식들을 이틀 정도 계속 먹으니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편의점에서 급히 신라면으로 응급처치를 하고 귀국할 때까지 한식을 파는 식당만 찾아다녔다. 외국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는 분들이 겪는 향수병은 음식이 큰 비중을 차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맛있었던 일본 음식을 뽑자면 텐진에서 먹은 달콤 고구마스틱. 1년이 넘는 몸 관리로 아무리 맛있는 간식도 맛만 보고 끝내는 탁월한 절제를 자랑한 나였지만, 1봉지를 그 자리에서 모두 먹었고, 다음 날 택시를 타고 또 사러 갈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꼭 드셔보시길 추천한다.
예전 신문 칼럼에서 휴가지에 책 한 권은 필수고, 독서를 통한 일상과의 단절이 진정한 쉼을 준다고 했다. 해외의 유명 그룹 CEO들도 휴가 때 주된 활동이 독서고, 이 시간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여 기업을 운영한다고 한다. 이번 일본 여행에서 매일 관광을 마치고 숙소에서 읽는 책이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다. 3일 차에 가져간 책을 모두 읽어 여행 마지막 날에는 허전하기까지 했다. 누군가는 여행을 가서까지 독서를 하냐고 할 수 있으나, 책이 있어 여행이 완성되는 기분이다.
교직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협력하여 업무를 수행한다. 다른 직종보다 동료와 가깝게 지내야 하는 탓에 어느새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시작된 독서 활동이 그나마 내가 나를 만나고, 반성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이번에 읽은 책에서도 단독자의 시간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독서를 꼽는다. 독서를 통해 위대한 선인들과 문학가들이 내 친구가 되고, 정신적 멘토가 된다고 한다.
즐거운 가족 여행에 좋은 책이 함께하여 행복하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통해 충전한 심신과 책을 통해 배운 것들로 다시금 힘차게 삶을 살아간다.
이후 펼쳐질 인생의 기록들은 더 깊이가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