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을 바라보는 단상

다정함이 아닌 본연

by 하이브라운

매년 3월은 내게 다른 달과는 다른 것들을 전해준다.

우리나라 학제가 3월에 시작하니 교직에 있는, 그리고 초등생의 학부모로서 내게 당연할 것이다.

두려움과 설렘, 걱정과 다짐, 혼란과 적응 등 부정적인 것들과 긍정적인 것들이 수시로 교차한다.

NCAA(미국대학스포츠협회) 남자 농구 대회가 열리는 3월은 온 미국이 열광하여 '3월의 광란'이라 불리는데, 마치 나와 어울리는 별칭 같다.


여유를 찾고 보니 어느덧 3월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난주 산책을 하며 앙상한 가지들이 봄을 준비하는 것을 보았다. 군더더기 없는 모습이 완전한 봄을 보여주기 위한 완벽한 준비 같았다. 작품을 준비하는 순백의 도화지 같은 느낌.

완전한 무(無)가 아름다운 것은 그 안의 가능성 때문일 수도 있겠다.


며칠이 지나고 어제오늘 길가에는 노란 개나리들이 예쁘게 피었고, 벚꽃은 두고 보라는 듯이 화려함을 준비 중이다. 시간은, 그리고 자연은 성실히 흘러가고 살아간다. 전쟁과 경제 불안, 유가 급등과 종량제 봉투 부족에도 그렇게 그렇게 흘러가고 살아간다.

내 3월도 어쩌면 그렇게 흘러가고 살아가는 것일 테다. 내가 만든 여러 감정들이 허공에 팔을 열심히 저었을 뿐. 의미 없기도 하지만, 그러니 살아 있음을 느끼지 않았을까? 스스로 위로해 본다.


새로운 학기와 사회에서의 다른 활동들을 시작하면서 '관계'에 대한 생각을 했다.

'인간'이란 단어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뜻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이 아닐까 싶다.

다정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이것은 믿어주셔야 합니다. 주변 많은 사람들에게 자주 듣고 있습니다. 자랑을 못하는 성격입니다. 정말입니다.)

국내에서 10만 부가 넘게 판매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인기가 보여주듯이 최근에는 친화력이 있고, 협력을 잘하는 '다정한' 생명체가 살아남는다는 학설이 지지를 얻어왔다.

주말 신문에는 책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는데, 오늘 소개한 책 중에 '다정함의 배신'이라는 책이 있었다. 인간은 선한 존재라는 낙관론을 경계해야 하고, 다정함은 착취를 위한 교묘한 위장술일 뿐이라는 말이 여러 번 곱씹게 만든다.


내가 타인에게 보여주었던 다정함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본다.

- 내가 배려받기 위한 선제적 행동 약식?

- 조직에서 나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노력?

- 지난날 여러 사람들에게 받았던 다정함에 대한 도덕적 양심?

모두 조금씩 포함되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 편히 살고 있다고 생각한 '나'도 치열하게 살고 있었구나.


곧 3월이 지나고 4월이 시작된다. 꽃은 만개할 것이고, 살갗에 바람을 닿게 할 수 있는 계절이 온다.

앙상한 것이 아름다웠고, 자연스레 피는 꽃은 더 아름다울 것이다.

관계에서도 앙상한 나 자신이 아름다운 것이고, 거기서 자연스레 나오는 것들이 더 아름다울 것이다.


3월의 광란에 수고 많았고, 보상과 같은 봄을 즐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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