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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떡을 나누는 아파트

화합을 소망한다

by 하이브라운
아파트 커뮤니티에 올라온 공지

며칠 전부터 아파트 커뮤니티에 공지가 올라왔다.

설날 떡 나눔 행사.

명절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 요즘이지만 따뜻한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두 달 정도 지나면 이곳에 이사 온 지 벌써 2년이 된다.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아파트에 여러 갈등은 생기지만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같고,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같을 수 있으랴.

어쨌거나 생업을 하시면서 이런 일들에 참여해 주시는 분들이 그렇지 못하는 내게는 너무 고맙고 죄송하다.


설날 떡 나눔 행사는 입주민들의 십시일반 성의를 모아 기획되고 진행된 것 같다.

가장 바쁜 직장에서의 시기와 지난주 부모님 효도여행에 함께한지라 이러한 행사가 준비되는지도 몰랐다.

성격상 나는 떡을 받으러 가지 않을 것이다. 아내도 마찬가지다.(이런 건 성격이 잘 맞는다.)

아파트 방송에서 떡 나눔 행사를 계속해서 홍보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방송 내용이 조금 바뀐다.

"떡 나눔 행사를 진행하고 있으니 세대별 0000에서 수령 바라며, 중복 수령도 가능합니다."

'이런. 미리 고향으로 출발하셨거나 부재중이라 떡이 남는구나.' 순간 걱정이 밀려든다.

많이 준비하셨을 텐데 많이 남아버리면 참 당황스럽겠다는 생각을 한다.


"감사 인사도 할 겸 받으러 다녀올까?"

"당신 받으러 갈 수 있겠어?"

"남으면 안 되잖아. 다음번에 행사할 때 더 많이 도움을 드리지 뭐"

"그럼 다녀와. 난 같이 못 가!^^"

용기를 내어봤다. 이런 성격은 참 고쳐지지 않는다. 낯선 사람에게는 기브 앤 테이크가 뿌리 깊게 박혀있는 이 성격. 정말 큰 용기였다.



저곳을 들어가야 한다.

들어가면 많은 입주자대표회의 임원들이 인사를 하고 난 너무 어색할 것이다.

그래도 좋은 취지의 행사에 격려와 새해 인사라도 하고 싶은 좋은 마음으로 용기 내어 들어간다.




깔끔하게 포장된 떡을 두 팩이나 나눠주시고 동호수를 기록하는 나를 보며 같은 동의 대표님이 인사를 하신다. 참 어색하지만 명절이니까 평소보다 더 반갑게 인사를 드린다.

나오면서 행사 장소에서 수고하시던 분들께서 새해 인사를 해주시고, 나 또한 새해 인사를 드리며 나온다.

다른 주민들이 볼까 미리 챙겨갔던 장바구니에 쏙~ 집어넣어 아무런 표정 없이 집으로 향했다.



아내는 내가 받아온 떡으로 금세 떡국을 만들었다.

이런저런 2년 간의 생활을 서로 이야기하며 맛있게 떡국을 먹었다.

뽑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떡으로 만들어서 그렇겠지만 사람 사는 정이 들어가서 더욱 맛있는 떡국이었다.


20년을 넘게 살던 지역을 떠나서 이곳에 이사 온 지 2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 낯선 부분이 많다.

당연히 친한 이웃도 없지만 이런 행사로 이 아파트가 내가 앞으로 살아갈 집이 되어가는 것 같다.

여기서 살아온 2년간의 소회와 감사 인사를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려야겠다. (모두가 잘 지내자는 숨은 의도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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