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터렐: 엣 원 @ 가고시안 갤러리 - (2)

James Turrell At One @ Gogasian

(1) 편에서 이어집니다.


1층에는 조금 더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웨지워크(Wedgework)’와 ‘간츠펠트(Ganzfeld)’ 시리즈등을 볼 수 있었다.


‘간츠펠트’는 독일어로 ‘완전한 장(場)’이라는 뜻으로, 아무런 시각적 자극이 없는 곳에서 뇌가 겪는 혼돈인 ‘간츠펠트 효과’에서 착안한 시리즈다.

흥미롭게도, 제임스 터렐은 대학에서 지각 심리학을 공부했으며 -지질학과 천문학, 수학 등과 더불어-, 간츠펠트 시리즈 역시 심리학자들과 함께 만들었다고 한다.


이 전시에 새로운 간츠펠트 시리즈인 All Clear (2024)에 들어가니, 눈처럼 보이는 타원형의 LED 패널을 중심으로 빛으로 채워진 방, 그 방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그 앞에 앉아서 관람할 수 있는 벤치가 있었다.

All Clear(2024) - James Turrell, L ©James Turrell. photo: Thomas Lannes
All Clear(2024) - James Turrell ©James Turrell. photo: Thomas Lannes


벤치에 앉아서 보는 방은 스크린처럼 평면적이었다. 강렬한 빛으로 채워진 방 안에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어쩐지 성경에서 다니엘의 친구들이 뜨거운 풀무불 안을 걷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마치 신전의 제단으로 올라가는 듯한 큰 스케일의 계단을 올라 중심 방에 들어가니, 샛노란 빛이 방을 감싸고 있었는데 굉장히 따뜻한 햇빛에 노출된 느낌과 디스토피아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이질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마 보색효과로 사람들이 흑색으로 보여서 일수도 있겠다.)


방은 그리 넓지 않게 느껴졌다. 모서리도 없고 사람들의 그림자 외엔 그림자도 없었다. 하지만 직업병(?) 발동해, 내 뇌는 이 공간의 ‘무공간성’을 부정하며 모서리를 발로 느껴보려고 하고 희미한 그림자 힌트들을 찾아냈다. 몰입이 쉽지는 않았다.


한 가지, 이 공간의 깊이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았다. 밖에서 볼 때는 꽤 가까워 보였던 타원형의 빛이, 다가갈수록 오히려 멀게 느껴졌다. 공간과 빛 만으로 이런 지각의 유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신기했다.


Roden Crater Site Plan (1983) ©James Turrell Photo.Thomas Lannes


전시장에는 로든 크레이터의 사진과 모델, 판화 등도 있었다. 로든 크레이터는 북 애리조나에 있는 한 사화산의 분화구를 활용한 대규모 프로젝트로, 1977년부터 천체 현상 관측을 위한 공간들로 조성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다. 세계 N대 불가사의에서 볼 법한 구조물을, 80이 넘은 나이까지 실현해가고 있는 그의 에너지가 정말 경이로웠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속 노인이나, '킬리만자로의 눈'에 나오는 파일럿이 떠오르는 인물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임스 터렐도 파일럿이었으며 항해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제임스 터렐의 작품에서 ‘빛’은 주제이자 대상이자 매체이다. 빛은 어디에나 있지만, 우리 눈이 인식할 수 있는 태양빛은 가시광선이라는 좁은 스펙트럼에 불과하다. 작가는 이 빛을 해부하듯 분해된 색을 보여주고, 해체된 빛의 춤 안이라는 비현실적 공간에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우주적 기억을 끄집어낸다.


잠시동안 현대의 우리가 살아가는 바닥, 벽, 천장으로 구성된 인조적인 공간 (아파트, 오피스 등)을 벗어나 공간화된 빛으로 들어가게 되며, 그 안에서 빛, 자연, 생물, 우주 등 태초의 인간이 지어진 환경을 경험하게 된다. 이 경험 가운데 우리는 원초적 인간, 신(神)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능을 잠시나마 되찾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를 경험하기 위해 작가가 구현해야 하는 장치는 모든 요소가 완벽히 통제된 무균실 같은 백색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빛은 항상 우리 가운데 있지만, 우리는 그 경이로움을 이러한 특별한 장치를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갤러리에서 나와 보니 하늘이 맑고 햇빛이 따스하게 비치고 있었다. 아무런 인식도, 대가도 없이 신(神)의 빛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가장 큰 신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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