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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May 16. 2017

[영화 리뷰] - <언노운 걸>

죄책감과 회한에서 찾은 이 사회의 희망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르덴 형제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거의 한 인물의 시점을 빌리다 싶이 할 정도로 담담하게 한 인물을 바라보고 따라가는 연출을 통해 다르덴 형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명하는 감독으로 그들이 연출한 작품들은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큰 사랑을 받아 왔다. 이번 작품 <언노운 걸>에서 그들은 조금 바뀐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스테리 스릴러라는 장르적 변화를 감행하였지만 결국 그들이 조명하는 주제와 이를 다루는 방식은 여전히 그들이 보여주었던 모습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사건이 해결, 혹은 범인의 검거보다는 사람이 더 중점적으로 느껴지는 영화였다.

  영화는 한 소녀의 죽음을 의사 제니[아델 하에넬 분]가 추적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여타의 영화들과는 추적의 방향이 조금 다르다. 영화가 더 중요하게 바라보는 것은 '누가 그랬느냐'가 아니라 '피해자가 누구인가'다. 제니가 추적하는 방향은 흐릿하게 찍힌 사진 하나를 들고 돌아다니며 피해자가 있었을법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떠난다. 그 과정에서 사건의 진상에 조금씩 접근하고 가해자에게 근접해지지만 이 역시 절대 가해자를 찾기 위함이 아닌 피해자에게 다가가기 위함이다. 재미있는 것은 제니와 피해자 사이의 관계에 어떤 큰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 둘 사이를 잇는 작은 연결고리는 사건 당일 영업을 마친 제니의 병원의 벨을 피해자가 눌렀다는 것, 그리고 제니는 무시했다는 것 뿐이다. 제니는 이 작은 죄책감에서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영화가 사실상 제니라는 캐릭터의 시선을 취하는 만큼 제니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녀의 캐릭터성이 갖는 특징은 곧바로 영화의 특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제니가 여자이자 의사라는 점이다. 사건의 피해자도 여성인 것처럼 물리적인 관계에서는 여성이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다.(영화에서 어떤 형태로든 제니에게 위협을 가한 인물들은 모두 남자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약자의 영화임과 동시에 의사라는 사회적 강자의 시선에서의 영화이기도 하다. 이 두 캐릭터성을 묘하게 보여주는 것이 제니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환자를 가장 우선시하고 제자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녀의 캐릭터가 그런 것이다.

  위 두 캐릭터성을 조합해 보자면 영화는 약자의 감성에서 강자의 시선으로 적어내린 참회록이다. 어쨌든 사건의 원동력은 죄책감이고, 이 사건에 다른 인물들이 어떻게 반응하는 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제니라는 캐릭터는 존재 자체로 굉장히 희망적인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강자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내려오고 약자로서의 역경을 딛으면서까지 사건의 진상을 향해 나아갔으니까. 결국 모든 진상을 파악하고 나서도 그는 가해자의 자살을 막으며 살아가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속죄하는 길이니까. 결국 극도로 사실적인(동시에 암울한) 이 영화에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곧대로 담아낸 캐릭터가 바로 제니인 것이다.

  앞서 말했듯 영화는 절망적인 사건으로 시작을 한다. 물론 다르덴 형제의 최신작에서 그런 요소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내일을 위한 시간>은 절망적인 사건을 막기 위한 고군분투였고 <자전거 탄 소년>은 유년의 불안정함을 극대화한 작품이고 이에 대응하는 단기간의 성장기였다. 반면 <언노운 걸>은 이미 벌어진 사건에 어른들의 이야기나 다름이 없다. 청소년은 피해자거나 어른들의 통재를 받는 대상으로 나온다. 그런 점에서 <언노운 걸>은 전작들보다 더 짙은 절망을 전제로 하는 작품이고, 다르덴 형제는 이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을 통해 그 짙은 절망에서 희망을 찾아내었다.

p.s. 하지만 필자는 이 영화보다 <자전거 탄 소년>과 <내일을 위한 시간>을 더 좋아한다.
그래도 의의가 있다면 위 두 작품보단 아니어도 잘 만든 작품이며
다르덴 형제의 변화가 돋보인다는 점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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