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신익 May 17. 2017

[영화 리뷰] -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지독한 놈들의 여유, 혹은 여유있는 놈들의 지독함

  경찰과 범죄 조직, 그들 사이의 의리도 배신도 언더커버도 다 이제는 흔한 장르가 되어버렸다. 특히 한국 영화에서 점점 자극적인 소재를 찾다보니 이 소재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장르 불문, 완성도 불문) 사용이 된 소재다. 처음 이 영화를 알게 됐을 때 '그런 영화'들 중 하나인 줄 알았다. 특히 설경구라는 배우가 이런 장르에서 갖는 이미지도 그렇고 훌륭한 연기를 영화와 TV를 넘나들며 보여주긴 했지만 임시완이라는 배우 역시 이런 장르에 소비되는 위치에 있는 배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칸 영화제에 초청이 됐다고 했다. 필자는 뭐가 아쉬워서 칸 영화제가 이런 영화를 초청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 접한 예고편에서 이 영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리고 운이 좋게 시사회를 다녀와서는 이 영화, 평범하게 '그런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야기야 분명 평범하다. 범죄자와 경찰 사이의 의리, 캐릭터 간 불신과 배신. 그런데 그 과정을 배열하는 플롯 구성에 있어 영화는 굉장히 참신하게 접근한다. 본격적으로 갈등이 벌어지는 출소 후와 그 이전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출소 이전이 시간 순서에 상관 없이 수시로 교차하면서 독특한 리듬으로 이야기를 전달해낸다. 특히 현수[임시완 분]가 재호[설경구 분]에게 옥중에서 자신에 대해 고백하는 장면에서 이 플롯 구성이 가지는 힘, 어딘지 모르게 통통 튀면서 빨려들어가게 되는 이야기 전달이 가장 빛을 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변성현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욕심을 부린 것으로 보인다. 장르적으로도 만화적인 코미디부터 씁쓸함이 진동하는 정통 느와르의 색채, 촬영에 있어서도 불안정한 핸드 헬드부터 스테디캠을 이용해 부드럽게 이동하는 촬영, 그리고 고정된 카메라를 중심으로 선보이는 세련된 화면까지. 롱테이크와 빠른 컷 전환이 반복되며 여러 차례 영화에 등장하는 액션에서 한 편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의 느낌들을 커버하고 있다. 이는 말 그대로 욕심이고 자칫 잘못하면 영화 전체의 일관성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러나 <불한당>은 이를 조율해내는 데 성공한다. 초반부의 유쾌한 리듬에 점점 느와르의 향기를 첨가해 마무리가 될 때 쯤에는 엄청난 공허감 속에서 마무리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플롯 구성은 굉장히 영리하며 비선형적인 구조로 과장하고 후반에서는 선형적인 구조로 이야기의 깊이를 불어넣는다. 결국 다양한 스펙트럼이 공존하고 영화 초반과 후반의 톤 차이가 굉장히 크지만 그것이 난잡하고 어색한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자연스럽게 이어져 (좋은 의미로) 한 편의 영화에서 두 세 편 이상의 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물론 변성현 감독의 연출과 제작진의 노고도 아주 크지만 설경구와 임시완이라는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케미 없이는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독하게 짜여진 판에서 더 독하게 영화 속 캐릭터를 소화하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며 임시완은 특히 여타의 아이돌 출신 배우들과 비교했을 때 독보적인 연기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한국의 범죄물과 형사물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어쩌면 이 장르 자체가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홍콩 중심의 느와르와 <대부>를 중심으로 한 할리우드의 느와르를 비롯해 이 장르에는 너무나도 큰 틀이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사이에서 한국 영화는 특유의 조폭 영화를 발전시켜 왔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 이 장르는 너무나도 많이 소모됐다. <불한당>은 이에 대한 대담한 돌파를 시도한 작품이면서 동시에 기존의 틀을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조합한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욕심을 가진 영화라서, 그리고 그것을 자기 식대로 소화해낼 수 있는 영화라서 정말 기분 좋게 봤던 작품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리뷰] - <나는 부정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