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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May 17. 2017

[영화 리뷰] - <세일즈맨>

격렬한 응어리가 휩쓸고 남겨진 것들

  이란의 영화라고 하면 우리에게 아주 어색할 수도 있지만 아쉬가르 파라디의 영화라면 조금은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물론 대중적으로 어색한 것이야 변함이 없겠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그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인물에 대해 세심하게 관찰하고 묘사하여 그들의 관계에 집중하는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은 담담하게 인물들을 바라보지만 그 어느 시끄러운 영화들보다 더 깊은 무언가를 던지는 감독이다. 이번 작품 <세일즈맨>은 <아무도 머물지 않는다> 이후 4년만에 나온 작품이다.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까지 수상한 이번 작품은 복수와 용서, 그 사이에서의 인간관계를 묻는다. 미스테리적인 요소가 가미된 작품이고 얼추 그 틀에서 답을 찾아내지만 그 이후의 공허감은 영화를 본 사람들은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영화는 미스테리의 형식을 취한다. 주인공 에마드[샤하브 호세이니 분]는 아내 라나[타라네 앨리두스티 분]가 괴한으로부터 공격을 당하자 그 괴한을 찾기 위해 추적한다. 전형적인 미스테리극에서 등장할 법한 추적의 동기이지만 이 추적의 구조는 조금 이상하다. 앞서 말했듯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영화에서 인물 간의 관계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의 영화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절대 일인극이 될 수 없으며 인물 간의 두 인물이 만들어내는 상호작용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추적의 구조가 이상하다는 것은 피해자와의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의 추적이기 때문이다. 라나의 입장에서는 이 사태 자체가 고통이고 돌이킬 수 없는 상처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 그만의 방법을 계속해서 시도하지만 그럴 수 없다. 자신의 집에서 가장 개인적인 공간(화장실)에서 가장 개인적인 행동(샤워)을 하다 당한 시도이고 그 공간에 타자가 들어와 공격을 했다는 것은 피해자의 내면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에마드는 얼추 라나를 위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는 독자적으로 추적한다. 계속해서 트럭에 집착하고 라나의 변덕에 분노하고 끝까지 추적해낸다. 동료의 아이와 식사하는 장면을 떠올리자면 에마드는 이 일이 없었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음을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실제로 그 돈이 가해자가 남긴 돈이 아니었다면 화목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자신의 추적을 마무리하는 장소로 무너질 위기에 있는 옛날 집으로 향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라나의 심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추적을 하게 된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영화는 돌아갈 여지를 이미 남겨놓지 않은 채 시작한 것으로 느껴졌다. 그 옛날 집은 파손됐고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으니까.

  영화 속 연극인 [세일즈맨의 죽음]은 그런 점에서 어딘지 모르게 의미심장하다. 에마드와 라나의 일터고 그들의 성격이 연극에 변칙적으로 투영되는 제 2의 수단인 것을 넘어 연극 속 인물들이 가해자와 그 가족들의 모습과도 너무나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맞이하는 결과도 마찬가지이다. 연극 속 세일즈맨은 죽음에 이르렀고 가해자 역시 같은 결과에 다다른다. 그 죽음은 에마드에게도 고스란히 되돌아간다. 장르적으로 봤을 때 모든 미스테리는 해결이 됐다. 보통은 사건의 종결로서 모든 것이 마무리가 되겠지만 세일즈맨은, 에마드의 혼은 죽었다. 그리고 남겨진 것들을 생각해보자. 과연 에마드와 라나는 다시 이전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영화가 한바탕 휩쓸고 난 자리에 남아있는 것들은 침묵과 공허함이었다. 결국 진상을 찾아냈고 어떤 의미에선 복수를, 어떤 의미에서는 용서를 했지만 그들은 모두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이 일련의 사건이 모두 끝나고 오프닝에서 연극 무대를 비추던 방식으로 에마드와 라나의 옛 집을 비춘다. 그렇게 영화의 이야기와 영화 속 연극은 하나가 되고 에마드와 라나는 등을 돌린 채 또다른 연극을 준비한다. 그렇게 세일즈맨은 죽었고 영화 역시 깊은 공허함만 남긴채 끝이 난다. 영화가 물어보고자 하는 것은 미스테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다음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여전히 조용하고 담담하게 일련의 사건들을 담아낸다. 영화 안에서도 연극이 등장하는데다 연극에 가까울 정도로 사실적이고 느린 템포의 촬영과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로 오히려 극에 빠져드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느린 템포의 영화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긴장이 되는 부분이 생긴다. 격렬했던 마지막 장면이 지나가고 힘이 쫙 풀릴 때, 그 때 맞이하는 공허감은 상당했다. 아마 당분간은 찾지 못할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강렬한 장르적 반전을 선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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