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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May 24. 2017

[영화 리뷰] - <목소리의 형태>

'무엇'의 영화가 아닌, '어떻게'의 영화

  일본의 만화와 애니가 전세계적으로 강세를 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체로 우리가 생각하는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지브리 스튜디오, 호소다 마모루, 신카이 마코토 등을 기반으로 한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원피스], [나루토] 등의 소년 만화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들이 주된다. 특히 후자의 작품들이 대거 독점을 하면서 일본 내 영화 체계가 상당히 불안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강국인 만큼 다양한 소재의 다양한 작품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고 있다.(그게 빛을 보고 있든 말든) <목소리의 형태> 역시 그런 축에 속하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왕따의 가해자와 피해자(심지어 이 피해자는 청각장애인)가 친구가 된다는 기발한 설정을 넘어 이 소재를 다루는 진중한 태도를 보면 단순히 참신함 뿐만 아니라 영화적인 완성도를 겸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는 꽤나 자극적으로, 혹은 가벼운 방식으로 시작한다. 이시다[이리노 미유 분]가 니시미야[하야미 사오리 분]를 왕따시키는 과정을 그리는 데 있어서 관객들이 특별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방식으로 묘사한다. 마치 타 영화에서 일상을 그리는 방식과 같다. 그러나 영화는 이렇게 위험한 지점을 지나갈 때마다 급격한 플롯의 변주를 한다. 대표적인 지점이 이시다가 왕따의 가해자로서의 모습을 가볍게 그려내다가 자신이 왕따를 당하는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보통의 애니메이션들이 시간에 있어 선형적인 플롯 구성을 하는 것과는 달리 <목소리의 형태>는 비교적 다채롭게 플롯을 변주하면서 영화의 감정을 이끌어내기도 하며 이미 드러난 감정에 호응하기도 한다. 또한 아주 짧은 컷들의 조합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은 아름다우면서 함축적으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해낸다. 특히 이러한 이미지의 형성이 좋았던 이유는 영화에 등장하는 소재들(그것이 주되든 단편적이든)에 대한 활용이 아주 뛰어났다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극적 완성도만큼 더 돋보이는 것은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태도다. 영화는 왕따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려내는데, 단순히 친구가 되는 것은 굉장히 빠르게 끝난다. 하지만 영화는 그 이후부터 이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과거의 관계가 지금의 관계에 갖는 의미를 이야기한다. 그렇게 해서 영화가 나아가는 지점은 단순히 '미안해' 한 마디 하고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미안해'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어떤 태도와 자세로 접근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에서는 이시다가 니시미야에게 용서받았다고 느끼는 순간이 굉장히 많다. 워낙 니시미야라는 캐릭터 자체가 나약하지만 착하게 그려지기 때문에 생각보다 포용 자체는 쉽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시다는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은 것들에 대해 스스로 거리를 둔다. 그리고 진정으로 스스로를 맡길 때는 그 잘못된 것들을 해소하고 나서였다.

  물론 영화에서 아쉬운 부분도 조금 보였다.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과장되고 오그라드는(!) 연출 방식과 일부 캐릭터라이징이 그러했다.(솔직히 토모히로[오노 켄쇼 분]의 캐릭터는 영화의 다른 요소들과 전혀 어울리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를 무마하고도 남을 만큼 신중하고 진실되게 이야기에 접근하고 있다. <목소리의 형태>는 일종의 소통하는 영화다. 소통으로 인한 결과물보다 소통 그 자체에 집중한다. 그렇기 때문에 <목소리의 형태>는 (심지어 중요한 장면에서도) 과장된 모습을 종종 보이지만 영화의 이야기가 굉장히 흡인력이 있고 영화가 끝나고 단순한 여운이 아닌 관객들에게 어떤 생각을 던져준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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