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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Sep 05. 2017

[스포일러有] 폭력이 향하는 방향

<브이아이피>, '그 장면'에 대하여

  올 해 한국영화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참 많이 화제가 됐던 것 같다. 비주류 영화계에서는 <노무현입니다>, <공범자들>과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대중의 관심을 크게 모았고, 대중 영화에서는 <군함도>가 스크린 독점과 고증의 문제 등으로 고역을 앓았으며 <택시운전사>는 소재가 언제나 민감하고 민족의 아픈 부분을 건드리는 소재다 보니 화제를 모으게 됐다. 언급한 작품들 중 가장 최근에 개봉한 <브이아이피>는 그 정도가 가장 크다고 확신할 수 없겠지만 가장 큰 축에 들어갈 수는 있겠구나 싶은 작품이다. 영화는 <신세계> 박훈정 감독의 신작, 김명민, 장동건, 박희순, 이종석 등 화려한 라인업과 영화가 풍기는 뉘앙스가 전작 <신세계>와 닮은 구석이 있어 개봉 전부터 관객들의 기대를 샀다.

  그러나 막상 개봉을 하니 돌아온 건 관객들의 질타였다. 그 이유는 영화 초반부, 김광일[이종석 분]이 여성을 납치해 벌이는 폭력 행각이 지나치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 부분이 특히 민감했던 이유는 안그래도 한국 영화에서 여성이 도구화되거나 피해자의 시선으로 바라봐지는 경우가 허다한 상황에서 그 표현의 정도가 지나치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로 <브이아이피>는 평점 테러를 당하고 있으며, 현재 부진한 흥행에도 영화의 아쉬운 완성도와 더불어 이러한 부분이 큰 원인을 담당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러한 논란을 모두 보고서 <브이아이피>를 관람했다. 영화 자체는 특별히 좋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나쁘지도 않았다. 다만 앞서 언급된 논란의 장면에 대해서는 정도가 과했다는 것에는 백번 동의한다. 단순히 여성을 대상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장면이 보여주려고 한 의도와 실제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의도가 불일치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선 해당 장면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김광일과 그 패거리가 길을 걷던 여성[정우림 분]을 납치해 자신들의 아지트로 데려와 고문하고 강간한다. 이를 앞에 두고 책을 보고 음악을 듣던 김광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투명한 우의를 입고 여자에게 다가가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그리곤 도구함을 뒤지다 낚시줄로 보이는 물건으로 여자의 목을 졸라 살해한다.

  이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영화의 극초반부다. 영화의 흐름 상 김광일이 어떤 인물인가에 대해 분명 설명이 필요했다. 김광일이라는 인물이 사이코패스고 그 악마성을 드러내야 한다. 이 장면의 목표는 그 악마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그 방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냐고 말한다. 캐릭터의 악마성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굳이 살인을 직접 드러내는 것은 옳지 않은 연출이라고. 이에 대해서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살인을 직접 드러내는 방법이 좋은 연출이라는 소리는 아니며 단지 오답은 아니라 생각할 뿐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비교되는 영화가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안소니 홉킨스 분]이다.

  그러나 <브이아이피>는 <양들의 침묵>과 동일한 성격의 영화가 아니다. <양들의 침묵>은 클라리스[조디 포스터 분]와 한니발의 심리를 파고들어 살인자의 심리에 도달하는, 캐릭터 중심적인 영화다. 비록 출연 분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언제나 가장 중요한 대목을 차지하는 것은 클라리스와 한니발의 대화이다. 반대로 <브이아이피>는 여러 캐릭터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그로 인한 상황을 지켜보는 영화이다. 그런 영화에서 하나의 캐릭터에게 긴 호흡의 캐릭터라이징을 한다는 것은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분명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인을 직접 드러내는 것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아쉬운 건 이를 표현하는 방식, 그리고 바라보는 방향이다.

  해당 장면을 복기해보자. 패거리가 우선 여자를 고문, 강간하고 김광일이 살인을 저지른다. 여기서 전반부, 패거리가 행하는 행동이 굉장히 길게 나온다. 가족을 죽였음을 자랑하듯 말하고 여자를 괴롭히는데, 세세하고 길게 묘사된다. 그 행동이 세세하게 묘사될수록 악마성이 부여되는 것은 당연히 패거리들이다. 또한 그 이전 시퀀스에서 영화는 충분히 김광일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만한 묘사를 해놓았다. 북한 안보성이 수사한 내용들, 그리고 차 안에서 잡히는 단독 샷. 그런데 패거리 캐릭터들은 그렇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의 행각이 길어지니 자연스레 다수의 가해자보다는 소수(개인)의 피해자에게 시선이 가게 된다. 첫 번째 시선의 불일치다.

  영화의 문맥상으로 불일치가 있었지만 그 부분에 대해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부분이 전라의 모습으로 와이드하게 잡은 샷이 종종 사용된다. 물론 이 역시 하나의 대화로 본다면 대화 씬에서는 '샷-리버스 샷-(와이드한)마스터 샷'으로 가는 게 전형적인 방법이지만 해당 장면에는 상황이 하나 더 붙는다. 강간과 폭행의 상황이다. 사람들은 모두 벗고 있고 당하는 쪽은 저항할 수 없게 묶여있다. 그러한 상황에서의 와이드 샷은 오히려 피해자를 더 처량하게 보이게 할 뿐 다수 패거리의 악마성을 드러내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김광일이 살인을 저지르는 대목이다. 이러한 난장판 속에서도 침착하게 자기 할 일을 하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은 충분히 캐릭터의 악마같은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여자와 김광일이 번갈아 잡히는 방식이 그러한 전달을 방해한다. 우선 김광일과 여자는 거의 동등한 비율로 잡힌다. 분량으로만 따지면 5:5에 가깝다. 이전 컷들에서 충분히 집중을 받은 만큼 5:5의 비율로 등장하는 여자의 모습 때문에 순수하게 김광일에게 몰입하기도 힘들다. 카메라의 앵글도 마찬가지다. 김광일을 잡는 화면은 평범하게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 보는 앙각이었지만 여자를 잡는 화면은 직부감, 여자를 수직에서 내려다보는 적나라한 앵글이다. 정상적으로 주고 받는 숏-리버스 숏이기만 해도 이미 받은 주목 때문에 여자에게 시선이 더 갈 여지가 있는 마당에 적나라한 앵글로 여자를 잡음으로써 영화가 주는 의미가 왜곡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비슷한 캐릭터로 비슷한 행각을 벌이는 <추격자>를 생각해보자. 극 중 지영민[하정우 분]은 김미진[서영희 분]을 결박하고 살해하려 한다. 그러나 <추격자>는 <브이아이피>만큼 적나라한 앵글을 사용하지 않고 분량 상 5:5에 가깝게 잡히기는 하지만 중요한 행동마다 카메라는 지영민을 향하고 지영민이 직접적으로 김미진에게 상해를 가하는 순간(몇 차례 정으로 머리를 찍으려는 시도가 실패하고 실수로 자신의 손을 찍자 직접 김미진의 머리를 치는 순간)에는 카메라가 절대 지영민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후반부 김미진이 사망에 이르는 순간에서도 마찬가지. 피는 튀지만 절대 직접 맞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렇게 영화는 5:5의 분량을 유지하면서도 세세한 포인트에 변화를 줘 지영민의 악마성을 드러내는 데 성공한다. 또한 이를 미뤄두더라도 분량에 대한 한 가지 명분이 더 있으니 피해자의 캐릭터라이징이다. <추격자>의 김미진은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충분한 캐릭터라이징이 이루어지고 사건의 핵심을 이루는 인물이다. 딸이 있으며, 아파도 중호[김윤석 분]의 전화에 일을 나가는 등, 이 캐릭터를 설명하는 대목이 충분히 있으며 사건의 핵심은 중호가 미진을 찾느냐 못찾느냐에 맞춰진다. 다시 <브이아이피>로 돌아와보자. 그 여성은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광일과 동일한 비중의 화면을 받을 명분이 있었을까. 그 장면 전으로든, 후로든 말이다. 그런 점에서 곱씹어보면 <브이아이피>의 해당 장면은 조금 급한 감이 없지 않았으며 감독이 의도한 바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시금 말하지만 영화 자체는 이냥저냥 평범했다. 특별한 강점도 없고 세세한 부분에서는 아쉬움도 많은 작품이지만 이런 느낌과 장르에서 나올 수 있는 재미는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지금 받고 있는, 영화 전방위적인 요소들에 대한 비난은 분명 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 논란이 된 해당 장면은 분명 과했다. 살인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살인을 직접, 어떤 방향으로 보여주느냐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고 그로 인해 이 장면에서 폭력이 향하는 방향이 바뀌어 잘못된 곳으로 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감독이 노렸던 것은 가해자의 공포감이 주는 불편함이었겠지만 관객들이 느낀 건 피해자에게서 느껴지는 불편함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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