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신익 Apr 01. 2018

[스포일러有] 순간의 요리, 세월의 농사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개봉한 지 한 달을 갓 넘긴 임순례 감독의 신작 <리틀 포레스트>는 보는 맛이 좋은 영화다. 육식 없이 채식으로만 이루어진 레시피가 주는 청량함과 신선함을 잘 살렸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보는 사람의 입맛을 끌어올리기에 영화를 보고나면 영화에 나온 음식들을 한 번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비록 이야기의 힘이 조금은 부족해 이 공백을 메꾸려는 목적으로도 보이는 장면이 몇몇 있지만,  영화를 보며 임순례 감독에게 다시 한 번 감사했던 점은 그 요리에 충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맛이 부각되는 영화지만 이 영화는 혜원[김태리 분]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영화다. 영화 내내 지금의 삶은 서울의 삶과 비교되며 진행이 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어린 시절 엄마[문소리 분]와의 기억까지 뻗어나간다.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재하[류준열 분]와 은숙[진기주 분]이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고 지금에 충실하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던진다. 물론 영화는 그 답을 꽤나 분명하게 제시를 해주는 편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야기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화는 영화의 핵심적인 아이템으로도 이를 표현하고 있다. 바로 먹을 것을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영화 초반에는 혜원이 요리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고향에 처음 들어와서도 그렇고 재하와 은숙을 만날 때도 주로 자신이 요리를 해서 먹는다. 영화는 이 요리 과정을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담아내고 요리의 결과물 역시 소소하지만 눈에 보이기에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난다. 그리고 점차 이곳에 머무를 시간이 늘어가고 본격적으로 혜원이 농사를 하기 시작하는 것은 영화가 꽤 진행이 되고난 후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요리를 하는 모습을 전반부와 같이 담아내는 모습이 많이 줄어든다. 그 때 음식과 관련해서 주된 화두는 농사를 어떻게 진행할 것이며 재하의 밭에 대한 걱정이다.

  이러한 영화의 흐름은 혜원의 변화에 있다. 혜원이 고향으로 내려온 이유는 배고파서라고 한다. 영화에서 혜원의 목소리로 설명된 것처럼 비단 정말 배고파서 내려온 것도 있지만 어쨌든 그의 귀향은 도피적인 성격이 강하다. 삭막한 서울 생활에 반감을 느끼고 고향으로 도피해 그녀는 아무 것도 없지만 행복한 삶을 산다. 그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요리다. 먹는 순간의 맛과 행복, 그것을 목적으로 혜원은 요리를 한다. 극 중 초반, 시골의 삶에 다시 적응해가면서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과 포만감을 채워가는 그 순간의 행복을 혜원은 느낀다. 거기에 함께하는 친구들 역시 같이 먹음으로써 그들은 그저 먹고 떠들기만 해도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나간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부를 넘기고서부터는 각자의 살 궁리를 하기 시작한다. 각자의 삶에서, 혹은 서로 삐걱거리는 부분도 있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본격적으로 대두된다. 재하가 왜 농사를 시작했는지,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서 혜원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문제를 피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재하의 말이 후반부를 축약적으로 보여준다. 비록 이 말은 혜원의 연인관계에만 국한된 말이기는 했지만 영화의 후반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단순히 요리의 맛에서 벗어나 혜원은 엄마에 대해서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하기 시작하고 삶의 방향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농사가 나온다. 순간이 아니라 긴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또 운에도 맡기면서 그 결실을 기다린다. 그러한 농사는 생계 수단이 되고 직업이 된다. 단순히 혜원이 시골에 적응해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농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는 농사의 시간과 노력을 은근슬쩍 삶의 방향에 적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의 먹을 것들은 보는 즐거움, 먹는 것의 대리만족을 위한 장치들로 보이면서도 단순히 그 목적을 위해서만 영화 안에 들어가있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원작을 보지 못했지만 영화의 주된 소재가 되는 만큼 임순례 감독은 그 안에 충분한 의미를 넣어 연출했고 영화의 편안한 분위기와 더불어, 마치 요리처럼 곱씹어 볼 수 있는 질문으로 만들어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에게 한 번쯤 생각해보게 만드는 이 질문은 마치 채소로 만든 영화 속 요리처럼 맑은 맛을 만들어내며 또 농사가 갖는 시간처럼 깊이감을 갖는다. 직접 드러내는 것 뿐만 아니라 영화 내적 요소들을 통해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참으로 영화적인 질문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스포일러有] <플로리다 프로젝트>, 결말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