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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Dec 22. 2018

[영화 리뷰] - <마약왕>

배우들만 남은 거대한 서사의 소용돌이

  우민호 감독은 <내부자들>을 통해 현대 사회 기득권이 구축한 부조리의 시스템을 현실에서 있음직하게 보여주었다.(물론 영화가 개봉하고 1년 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일이 일어나고 우민호 감독은 "현실이 영화를 초월했다"는 이유로 속편 연출을 고사하는, 마냥 웃지만은 못할 상황이 벌어진다.) 그 이전 작품들의 행보가 아쉽긴 하지만 <내부자들>을 통해 사회의 큰 그림을 보는 날카로운 눈을 가졌음을 증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작품, <마약왕>은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1970년대로 시선을 돌려 더 자유롭게 사회를 바라볼 수 있었고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자 대상)으로는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송강호가 자리하고 있었다. 송강호 뿐만 아니라 조연진도 화려해 멋진 개판(!)을 기대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배우들은 제자리를 굳게 지켰으나 영화가 이야기를 따라가지를 못했다. 이번엔 컨트롤하기엔 너무 큰 서사의 소용돌이었던 것일까.

  의미가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내부자들>과 비교를 하자면 아마 관객에게 이입을 유도하는 방식의 차이일 수도 있다. <내부자들>은 캐릭터들에게 비교적 간단한 상황을 부여한다. 안상구[이병헌 분]에게는 복수를, 우장훈[조승우 분]에겐 검사로서의 야망을, 이강희[백윤식 분]를 비롯한 기득권에겐 그들의 야욕을. 그 안에서 돌아가는 판 자체는 복잡할지라도 큰 틀에서의 갈등 양상은 간단하게 드러난다. 여기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기득권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안상구와 우장훈에 이입하여 영화를 보게 된다.

  <마약왕>은 얘기가 다르다. 이두삼[송강호 분]이라는 인물 자체가 워낙 입체적으로 읽힌다. 영화적으로는 주인공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악당이고, 누군가에게 고개 숙여가며 일하는 일종의 영업직에서 스스로가 머리가 되는 등 캐릭터가 변화하는 폭 자체도 굉장히 넓으며 그에 따른 성격의 변화도 큰 폭으로 일어나는 편이다. 우장훈이나 안상구처럼 방향이 분명한 캐릭터가 아니다. 그런데 영화에 얽힌 판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부자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 내에서 이두삼은 다양한 캐릭터와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 관계에 얽히게 된다. 캐릭터와 서사, 양쪽에서 모두 힘을 받아야 하는 영화라는 말이다.

  어느 하나 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 특히 송강호의 연기 덕분에 캐릭터 문제는 얼추 해결이 되었다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서사에서의 구멍은 무시할 수가 없다. 서사 논리 자체는 큰 결함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전개하는 방식에서 각 캐릭터들이 분절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고(=각 조연 캐릭터들이 새로운 갈등을 제공할 때 갑작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약왕>이 구현해낸 70년대의 이미지는 분명 아름다우면서도 불안하고 어두운, 함축적인 톤을 제시한다. 미장센의 구성뿐만 아니라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특히 자극적인 장면일수록 음악을 적극 활용하면서 우아하면서도 일종의 비웃음같은, 씁쓸한 느낌을 잘 살려냈다. 영상으로서는 분명 표현에 성공했다 생각하나 이야기적인 부분에서 결여된 것이 느껴지면서 영화적으로는 성공했다고 보기 어려운 작품이라 생각한다.

  결국은 배우들만 남는다. 제임스 카메론이 "영화의 마법은 배우로부터 나온다."라고 할 만큼 배우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실제로 백번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지만 그 마법이 제대로 만개하려면 영화적인 기반이 충분히 갖춰져야 한다. <마약왕>은 깊은 캐릭터성과 복잡한 이야기가 합쳐진 서사의 소용돌이를 결국 컨트롤하지 못했고 그 점에서 영화적인 기반이 부실해졌다고 생각한다. 특히 139분이라는, 적지 않은 러닝 타임을 할애한 만큼 감독을 비롯해 만든이들의 야심이 느껴지는 작품이었고 영화의 장점을 충분히 볼 수 있는 작품이었기에 그 실패가 더 아쉽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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