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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Jan 20. 2019

[영화 리뷰] - <주먹왕 랄프2: 인터넷 속으로>

자학을 섞은 흥겨운 디즈니 쇼

  <주먹왕 랄프>는 국내에선 크게 흥행하지 못했지만 필자에겐 강한 인상이 있는 영화이다. 디즈니 사상 최초로 게임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그것도 악당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과 이에 이어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선 상상할 수 없던, 비록 그래픽이지만 화려한 카메오를 자랑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도는 차라리 드림 웍스에 어울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영화 내적으로는 디즈니가 지향할만한 가치를 충분히 전달하면서도 단지 튀는 형식에 그치지 않는, 탄탄한 이야기와 연출로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 영화였다. 속편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는 이러한 전작의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의 사이즈는 더 커졌지고 이야기적으로는 조금 산만해졌지만 크게 상관은 없다. 여전히 이 영화는 흥겨운 디즈니식 쇼니까.

  시대적인 흐름에 맞춰 인터넷 세상으로 간 것은 물론이요 아마존, 구글 등등 현실에 존재하는 이스터 에그를 찾아보는 재미가 우선 쏠쏠하다. 특히 실제 인터넷에서 존재하는 브랜드 뿐만 아니라 설정들을 적극 활용하며(검색, 스팸 광고, 아이템 거래, 이베이 등등) 지금 세대의 관객들과 공감하며 진행하는 이야기는 톡톡 튀는 느낌을 준다. 전작이 그러했듯 자신의 존재와 우정에 대한 주제는 것은 여전하며 특히 '관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가며 착실하게 확장했다. 엄청나게 많은 이스터 에그가 들어오고 이를 설정으로 승화하면서 이야기가 조금은 산만해졌지만 기본은 확실하게 갖춰진 영화였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 눈여겨볼 것은 분명하게 등장하는 악당이 없다는 것이다. 섕크[갤 가돗 분]가 유사하게 최종 보스의 느낌으로 등장하는가 했지만 오히려 바넬로피와 철저하게 교감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렇게 공석이 된 악당 자리를 랄프의 자의식으로 대체하면서 영화는 주제에 대한 질문을 확실하게 이끌어 나간다.(다만 아쉬운 건 그 마무리가 굉장히 직접적이고 쉽게 이루어진다는 점)

  그리고 짚어볼 부분은 이스터 에그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디즈니 공주들을 집대성한 오마이디즈니 시퀀스는 픽사 소속인 메리다와만 말이 통하지 않게 설정하는 등의 외적인 부분부터 공주들의 설정을 두고 "경찰 불러줄까?"라고 하거나 그들의 드레스를 편안한 현대 복장으로 바꿔버리는 등 기존에 자신들이 세웠던 공주의 이미지를 과감하게 버려버린다.(물론 그 공주들을 각각 내적으로 파고들어보면 주체적인 여성상을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다.) GTA를 연상케 하는 슬로터 레이스를 꿈의 장소로 묘사하면서 역시 기존 디즈니에 대한 이미지(착하고 올바른 것)에 대해 반대되는 설정을 제시한다. 물론 디즈니 영화에서 이런 이미지 역전 현상은 종종 등장한 설정이다. 대표적으로 <토이스토리> 시리즈에서 저그 대마왕과 다른 버즈가 공놀이를 하는 모습이 있고 반대의 경우는 <겨울왕국>에서 한스가 악역으로 설정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디즈니라는 브랜드가 갖는 전체적인 이미지에 대해 반대되는 이스터에그와 설정을 더하면서 영화는 약간 자학 섞인 코미디의 재미도 선사한다.

  아쉽게도 근래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들과만 비교해도 <주먹왕 랄프2>는 그렇게 뛰어난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비교적 선이 확실하고 분명했던 1편과 달리 약간의 사족이 붙어 산만해지고 길어진 느낌이 강하게 든다. 하지만 큰 질적인 하락 없이 성공적으로 외형을 확장했다는 점,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칭찬할만하다. 특히 단순히 이스터에그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 내적으로 충분히 활용하는 요소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 확장은 더더욱 성공적이라 생각하며 <주토피아>와 마찬가지로 디즈니의 자학은 역시 뛰어난 잠재성(?)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그리고 쿠키 영상까지 노골적으로 형식을 활용하면서 걸작은 아니어도 흥겨운 디즈니 쇼를 완성해내지 않았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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