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는 넓어지는데 어째 획일화 되어가는 마블 영화들
무려 2천 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되었다고 하니 마블은 단순한 영화 프랜차이즈를 넘어 진정 문화로 거듭났음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바로 <캡틴 마블>을 통해서이다. 그동안 마블은 개성 있는 슈퍼히어로 영화들을 통해 독자적인 세계관을 확실하게 구축했고 그 영향은 현재 존재하는 그 어떤 프랜차이즈보다 더 뛰어나다. 여기서 집중하고 싶은 부분은 지금 마블이 보여주고 있는 결실보다는 그 과정에 있다. 성공적인 대규모 크로스오버를 보여준 첫 번째 <어벤져스>, 그리고 장르적 저변을 넓히고 영화적인 깊이를 더한 페이즈 2의 작품들과 페이즈 3 초반 작품들을 지나 지금에 이르른 지금,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제외하면 마블의 최근작은 비교적 획일화된 느낌을 강하게 준다. <캡틴 마블>은 그러한 의심을 확신으로 보여준 영화였다.
우선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이 영화가 절대 재미없거나 형편없는 영화는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히어로를 등장시키는 영화로서 밋밋하지 않게 고민하여 플롯에 반전을 두고 나름대로 괜찮은 형식으로 접근한다. 나름 매끄럽게 서사를 전개하고 영화 내 뿌려둔 떡밥들을 영화 내에서 영리하게 잘 회수한다. 거기에 마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팬 서비스까지, 나름대로 괜찮은 엔터터테인먼트 영화를 뽑아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름대로 괜찮은 수준이다. 마치 <블랙 팬서>를 보았을 때처럼, 히어로에게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기존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강점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기존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보면 <다크 나이트>에 필적하진 않아도 나름 유쾌하고 진중하게 히어로 스스로의 의미를 물었다. 비록 2편이 삐끗하긴 했지만 <아이언 맨> 시리즈는 "I am Iron Man"이라는 대사 하나로 세 편의 영화 동안 토니 스타크에 대해 깊게 탐구했으며 <캡틴 아메리카> 역시 1편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2, 3편에 이르러서 캡틴 본인과 쉴드, 그리고 히어로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물었다. <캡틴 마블>은 그 부분에 대해 당연하다는 듯이 넘어가버린다. 캐릭터 자체가 그러한 부분이 있지만 똑같이 평면적인 캡틴 아메리카를 마블이 어떻게 그려왔는지를 생각해보면 그 결이 확연하게 다르다. 적어도 캡틴 아메리카는 베스트 프렌드의 입을 빌려 "넌 용감하고 영웅적인 인물이야"란 대사 한 줄로 핵심적인 캐릭터라이징을 대신하진 않았다.
마블 히어로 중 최강의 히어로 중 하나로 꼽히는 캡틴 마블인 만큼 액션을 보는 맛도 시원시원하다. 하지만 그 최강이라는 점이 영화가 갖는 약점이기도 하다. 힘의 차이가 확연하게 나다 보니 화려한 액션도 금방 긴장감을 잃게 된다. 이에 필적하는 악당을 당장 제시할 수 없는 영화 내/외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주인공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동시다발적 상황을 연출하거나 물리적 요인 외의 요소를 넣어 긴장을 유발해야 한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캡틴 마블의 능력을 상회하는 상황이 등장하진 않으며(그나마 우주 전투 시퀀스를 노린 것 같은데 이 역시 쉽사리 해결된다.) 후자의 경우 앞서 말했듯, 캐릭터라이징과 서사가 단순화되어 극적인 긴장감이 살아나지 않는다. 결국 이 영화의 갈등 요소들은 굉장히 밋밋하거나 금방 적응하게 되는 그런 요소들이었다.
단점을 위주로 말하긴 했지만 절대 나쁜 영화는 아니다. 나름대로 재미있게 관람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특히 페이즈 2~3를 아우르는 라인업에서 느꼈던 재미와 영화적인 인상들을 느끼기엔 거리감이 꽤 있는 영화였다. 재미있는 부분은 오히려 영화가 다루는 주제 면에서는 다시 한 번 확장을 했다는 것이다. <블랙 팬서>에서는 미국 내 흑인들의 이슈를 끌어왔다면 이번에는 마블 최초의 여성 영화라는 점, 그리고 난민 문제를 끌어와 주제 삼았다는 점에서 기존 마블 영화들이 다룬 주제의 폭을 한 층 넓혔다. 하지만 다루는 주제가 넓어졌다고 영화의 완성도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주제를 다룬다고 한들 이 영화는 <캡틴 마블>이다. 인물과 상황, 이야기를 다루는 솜씨가 확실하지 않다면 그 어떤 주제를 가져온다 한들 훌륭한 영화는 되기 어렵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