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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Mar 07. 2019

[영화 리뷰] -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내재된 위압감으로 풀어낸 욕망의 굴레

  본국에서 활동은 더 오래 전부터 시작했지만 영어권으로 넘어와 작업을 한 <더 랍스터>이후,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빠르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는, 이를 넘어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감독이 되었다. 영어권으로 넘어와 작업한 영화는 단 세 편.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그들 중 세 번째 작품이다. 세상의 어느 극단을 건드리는 서사와 이미지로 독창적인 영화적인 세계를 구축하던 란티모스 감독의 전작에 비해 <더 페이버릿>은 비교적 내재된 상태로 전달되는 느낌이 강하다.(물론 어디까지나 비교적이다 비교적) 앞선 두 작품, <더 랍스터>와 <킬링 디어>가 날이 선 칼날을 관객의 눈앞에 세운 것 같은 영화들이었다면 이번 영화는 묵직한 벽이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그 칼과 벽이 관객을 위협하고 아름다운 압박감을 주는 것은 여전하다.

  영화는 앤 여왕[올리비아 콜먼 분]이 걸친 화려한 외투를 벗는 장면으로 시작한다.(위 스틸 컷 중 좌측) 넓은 공간을 가득 메운 화려한 미장센과 이를 강조하는 듯 약간 부감으로 찍은 앵글이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말버러 공작 부인[레이첼 와이즈 분]의 등장으로 둘 사이의 관계가 조명되고 궁전을 선물하려는 앤에게는 비정상적인 여왕이라는 캐릭터를, 말버러 공작 부인은 전쟁에 관한 대화를 통해 이런 여왕을 통제, 혹은 이용할 줄 아는 캐릭터를 부여한다. 그리고 에비게일[엠마 스톤 분]이 등장한다. 영화 초반 에비게일의 이미지는 무조건적인 생존이다. 눈 앞에서 희롱을 당하고 마차에서 떨어져 더러운 몰골을 하고서도 윗 사람에 비위를 맞추며 살아남으려 애를 쓴다.

  기본적인 캐릭터 소개가 끝나고 영화는 목표이자 방향을 제시한다. 바로 당시 귀족들이 벌이던 거위 경주이다. 해당 경주에 광적으로 열광하는 귀족들의 모습과 무언가를 먹는 모습을 느린 화면으로 담아내면서 그들의 탐욕스러운 모습을 여러 컷들로 담아낸다. 이 영화는 이미 이 순간부터 '욕망'을 주제로 이야기할 것을 예고한 셈이다. 다만 큰 차이점이 있다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남자들의 욕망과는 다르게 세 주요 인물들의 욕망을 이야기할 땐 직접적인 이미지 사용을 최대한 자제한다는 점이다. 특히 기존에 유혈이 낭자하고 자극적인 이미지로 관객을 시험하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들을 생각하면 상당히 의외이긴 하다.

  물론 사격장이나 에비게일의 차, 그리고 이후 이어지는 말버러 공작 부인의 비극이나 여왕의 침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볼 때 이 영화가 직접적인 이미지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이미지들도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전작들에 비하면 덜 직접적이기도 하고 이 영화는 조금 더 공간의 느낌에 의존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오프닝 장면을 설명하던 것과 연장되는 부분인데, 이야기가 벌어지는 영국 왕실의 공간은 크기와 화려함의 측면에서 극치를 달리는 공간이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미장센을 빈틈 없이 채워 넣으며 내용적인 압도감을 주고 아래에서 위로 촬영하는 앙각으로, 특히 광각의 어안 렌즈를 사용해 조금 외곡된 화면으로 촬영하여 공간이 주는 크기 상의 압도감, 특히 수직적인 위압감을 상당히 잘 담아내었다.

  기본적으로 촬영된 앵글 자체도 이러한 위압감을 상당 부분 드러내지만 카메라 워킹이 더해지며 이 위압감은 극대화된다. 칼로 잰 듯 딱 떨어지는 카메라 이동과 패닝을 통해 미장센과 카메라 앵글이 내재한 이미지를 배가시켜준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궁중 암투를 다룬 영화임에도 이 영화가 다른 영화들보다 더 강한 힘을 갖는 이유는 이러한 연출, 촬영적인 부분에 상당 부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란티모스 감독의 전작에서도 자주 활용되었던, 단순한 소리의 반복과 이에 맞춘 장면 편집을 통해 긴장을 극대화하기도 하며 급작스럽게 등장하는 웅장한 음악과 화면을 자유자제로 사용하기도 한다. 화면에 힘을 받고 동시에 화면에 힘을 주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긍정적으로 시너지를 내며 이미 내용적으로 뿐만 아니라 시청각적으로 영화가 표한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

  음악을 비롯한 소리의 활용과 캐릭터의 구현, 미장센 등의 면에서 기존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매력을 십분 확인할 수 있으면서도 훨씬 재단된 듯한 카메라 워킹과 내재된 이미지들, 그리고 전작들보다 더 빽빽한 미장센과 구도상의 변화 등, 새로운 모습들도 십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존 작품에 등장하던, 스크린에 투영하던 극단적인 이미지들보다 훨씬 내재된 상태이되 이를 담아내는 화면 상으로 훨씬 극단적으로 변화한 이 영화는 스스로를 지키면서 변화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현주소를 확인하기에 적격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비록 아카데미는 이 영화에서 올리비아 콜먼에게만 상을 내주었지만 아마 감독 본인의 작품 세계를 확인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작품들 중 하나로 남을 것이라 예상해본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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