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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Feb 10. 2019

[영화 리뷰] - <뺑반>

말이 많아지는 장르극이 실패하는 전형

  설 시즌을 노리고 나온 영화의 티가 팍팍 나기는 하지만 그렇게 쉽게 <뺑반>을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레이싱을 전면에 앞세워 카 체이싱에 비중을 둔 영화가 한국에서는 거의 없다싶이 했고 그러한 장르적인 시도와 더불어 <차이나타운>으로 인상적인 데뷔를 치룬 한준희 감독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차이나타운> 역시 기존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스타일의 영화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뺑반>의 소재 역시 어느 하나 튀는 부분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영화는 김칫국을 잔뜩 들이키고 있었다. 설명이 과해지는 영화들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영화의 중반까지는 그럭저럭 재미있다. 딱히 레이싱이 전면에 등장하지는 않고 전형적이고 토속적(!)인, 사람 냄새가 나는 경찰 코미디 영화의 모습을 띄지만 적절하게 분배한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합이 그럭저럭 괜찮다. 이 흐름이 어그러지기 시작하는 것은 민재[류준열 분]의 과거사가 본격적으로 조명되고 인물이 변화하면서다. 그 전까지는 전형적이라도 무난한 길을 달리고 있었다면 민재가 변화하는 포인트를 기점으로 커브를 확 꺾어버리는 느낌이다. 여기서 영화가 갖는 문제점들이 속속들이 드러난다.

  첫 번째는 시연[공효진 분]이라는 캐릭터가 붕 뜬다는 점이다. 과하게 많은 사연을 가진 민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돌아가지만 이 영화의 시선은 시연의 시선을 따라가며 극중 부여되는 이야기의 양과 비중을 제외하고 형식적으로 따져봤을 때 주인공은 엄연히 시연이다. 그렇지만 영화는 시연에게 이입할만한 여지를 거의 주지 않는다. 전형적인 경찰의 모습같지만 이야기적으로는 물론이고 이미지적으로도 설명이 불충분한 캐릭터다. 완전히 관찰자로서 등장하는 인물이라면 모르겠지만, 사실 그래도 문제가 있지만 시연은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인데도 그렇다보니 이입이 되지 않는 것은 굉장히 큰 문제이며 시연의 시선을 함께 따라가는 관객의 입장에서도 시선이 붕 뜨는 부분이 있어보인다.

  두 번째는 이야기의 양 자체가 굉장히 방대하다는 것이다. 애초에 이 영화 하나로만 끝낼 생각이 없어보인다는 점이 각본에서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그렇다보니 이 영화를 제대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뒤를 위한 토대를 닦아두려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영화가 중반부에 큰 전환점을 맞아들이고서 못다한 이야기들을 다 풀어내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영화의 템포도 크게 변화한다. 기본적으로 정재철을 잡아들이려는 두 경찰의 고군분투가 감성적인 이야기로 돌변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답을 찾기 위해 후반부 러닝타임 대부분을 할애하지만 그게 영화 전체로 보았을 때 이로운 선택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속편을 위해 캐릭터를 방대하게 확장하려하는 시도로 보인다.

  마지막 문제점은 카 체이싱이 굉장히 단조롭다는 데 있다. 어쨌든 영화는 이름부터 뺑소니 전담반을 앞세우고 민재의 과거와 정재철의 캐릭터를 비추어보았을 때 속도와 레이싱이 주된 화두로 떠오르게 된다. 아예 대놓고 카 체이싱을 만들만한 판을 이야기적으로 깔아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 체이싱 시퀀스는 굉장히 별로다. 카 체이싱이라고 할만한 시퀀스가 크게 중반에 한 번,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한 번 등장한다고 봐도 되는데 두 시퀀스 모두 주행하는 컷을 연속하다 마지막에 스턴트 한 번으로 끝나는 느낌이 든다. 그나마 마지막 카 체이싱은 그 스턴트의 빈도를 높이긴 했지만 여전히 단조로운 느낌이 강하다.

  그나마 배우들의 에너지나 악역을 설정하는 방식에서는 굉장히 긍정적인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민재만큼이나 수많은 이야기를 가진 정재철에게는 적당한 대사와 연기로 나름 잘 압축해 잘 전달했으며 이를 잘 살린 조정석 배우의 연기 역시 굉장히 멋있었다. 류준열 배우는 배우 자체가 갖는 느낌을 좋게 생각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평범한 느낌이 나면서도 각을 잡은 느낌이 어색하지 않아서 좋다. 공효진의 연기 역시 캐릭터와는 별개로 현실에 밀착한 느낌이 나서 좋다. 하지만 이는 영화 자체가 뛰어나지 않는 한 부수적인 느낌으로밖에 남지 않는다. 만드는 입장에서는 한국판 <분노의 질주> 세계관을 펼쳐보고 싶었던 것 같은데, 시리즈를 거듭하며 기반이 쌓이자 유니버스를 확장한 <분노의 질주>를 따라잡기에는 너무 큰 그림을 그렸던 것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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