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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Apr 21. 2020

[스포일러有]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얼굴

영화 <1917> 분석

※본 포스팅은 영화 <1917>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17>에 있어 촬영은 아주 큰 무기이자 단점이라고 볼 수 있다. 원 테이크처럼 보이도록 연출되었고 이를 착실하게 영상화하는 데 성공한 로저 디킨스 촬영 감독의 촬영은 분명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요소이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할 만큼 유려하게 전쟁을 담아낸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과소평가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많은 이들이 전장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여 체험시켜주는 여러 영화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으며 기술적인 부분을 제외한다면 이미 많이 봐왔던 영화라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필자는 이 영화가 진정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전쟁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꾸준하게 질문을 던지고 난 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보여주는 얼굴이 비로소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바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보편적이지 않은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이 여정을 끝까지 이어가는 사람이다. 형을 살려야 한다는 동기도 분명하며 지도를 잘 보기에 능력도 갖췄으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성격인 블레이크[딘-찰스 채프먼 분]가 그 역할을 맡는 게 통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동기도 없으며 냉철하고 소극적인 스코필드[조지 맥케이 분]에게 그 역할을 맡긴다. 특히 극 중 솜 전투에 참여해 훈장까지 받았으나 훈장을 버렸다는 대사를 통해 이미 스코필드는 한차례 전장에서 지옥 같은 경험을 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실제로 솜 전투를 통해 영국군은 네 달 가량의 전투 동안 고작 10km밖에 나아가지 못했고 영국, 프랑스, 독일 군을 합치면 도합 12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전투다. 그러니 영화에서 목표 지점까지의 14km는 스코필드에게 어떤 지옥이었을지,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나면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비어있는 독일군 참호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후 블레이크에게 "왜 하필 나를 데려왔냐"라며 화를 내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스코필드는 보편적인 관점에서 절대 주인공 감은 아니다. 블레이크와 스코필드의 관계는 '무모하게 기적을 행하려는 자'와 '이를 만류하는 자'이며 보통 영화에서는 전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다른 군인이 낮잠 자는 블레이크를 부르는 이 영화의 오프닝에서 행동 하나 없는 스코필드에게 초점을 떼지 않는 카메라를 보면 이 영화는 애초부터 스코필드가 주인공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프닝을 제외하고 영화 중반까지 이 영화는 스코필드가 군인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이 사건과 큰 연관점이 없음을 드러냈다면 영화 중반, 블레이크가 사망한 순간부터는 왜 스코필드가 이 사건을 이끌어 가야 하는지를 설득한다. 영화를 돌이켜보면 전쟁 영화임에도 사람이 죽는 장면은 거의 없다. 죽어 있는 사람을 다수 비추긴 하지만 화면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독일군 비행사, 블레이크, 독일군 저격수, 술 취한 독일군 정도로 상당히 적은 편이다. 주인공에게 적군을 상대로 승리하는 것이 아닌, 죽을 위기에 처한 아군을 퇴각시키는 임무를 부여한 이 영화는 애초부터 싸우는 영화가 아닌 살리는 영화다.

  블레이크의 죽음 이전까지는 스코필드와 블레이크, 단둘만의 임무였지만 블레이크의 죽음을 기점으로 스코필드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가며 목적지로 나아간다. 우연히 조우한 아군 부대의 도움을 받아 이동하고 진흙탕에 빠진 트럭을 필사적으로 미는 스코필드를 시큰둥하게 쳐다보던 병사들도 이내 스코필드에 동참한다. 자세한 내막을 들은 이후로는 스코필드에게 술 한 모금을 건네고 행운을 빌어주기도 한다. 위기에 처한 순간에는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프랑스 여인에게 도움을 받고 길을 안내받기도 하며 스코필드는 여인이 데리고 있는,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우유를 건네기도 한다. 죽을 위기를 넘긴 후 들려오는 영국 민요는 살아있음에 대한 안식을 선사한다.

  블레이크의 개인적인 동기가 강했던 이 임무에 영화는 블레이크의 죽음을 시작으로 '살려야 한다'는 보편적인 동기로 확장해 나간다. 특히 주인공처럼 비치던 블레이크의 죽음이 충격을 주는 이 영화의 작법은 보편적인 동기에 더 큰 힘을 실어주고 영화 내에서 스코필드가 어떻게 목적지까지 도달하는지의 과정을 통해 보편적 동기를 서서히 설득해 나간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압축해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스코필드가 초원을 횡으로 달리는 클라이맥스 장면이 아닌가 싶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대규모 전투(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장면이지만 진정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스코필드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해당 클라이맥스 장면은 목표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의 사건을 다루기에 가장 극적인, 말 그대로 클라이맥스지만 영화가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이 가장 눈에 띄게 변화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장면 이전까지 영화는 인물만큼이나 공간을 중요하게 담아낸다. 앞서 언급했듯, 관객들을 전장 안으로 초대하는 느낌을 주는 이 영화는 인물의 뒤에서 동선을 따라 이동하거나 인물을 제쳐두고 공간을 우선적으로 담아내기도 하고 멀찍이서 인물을 담아내는 등, 인물의 동선과 공간을 중시한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클라이맥스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인물의 움직임에 고정된 채 같은 구도로 1분가량 달리는 모습만을 담아내려 한다. 그것도 인물의 정면에서, 풀샷이긴 하지만 표정이 잘 드러나는 구도로. 비록 엑스트라의 변수(실제로 계산되지 않은 충돌이 있었다고 한다)와 특수효과(폭약)로 인해 온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참호를 벗어난 직후와 다시 참호로 들어가기 직전을 보면 스코필드의 결연한 표정이 아주 잘 드러난다. 그리고 그 표정이 살리는 것이 목적인 이 영화에서 진정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비록 영화 속에서 스코필드는 모두를 살리지는 못한다. 가장 결정적으로 자신의 동행이었던 블레이크가 눈앞에서 죽었고 클라이맥스에서 돌격이 시작되고 화면 밖에서 죽어나간 병사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나누는 대화도 블레이크의 형에게 블레이크의 부고를 전하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영화는 죽은 나무에 기대어 낮잠을 자던 스코필드로 시작해 살아 있는 나무에 기대어 눈을 감는 스코필드로 막을 내린다. 편지(명령서)를 전달하고 자신의 가족에게 받은 편지를 손에 쥔 채, 블레이크의 부모에게 앞으로 써야 하는 편지를 기약하며.

  영화는 앞서 말했듯 살리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그 의지를 영화 안에서 서서히 확장해 나간다. 개인적인 동기에서 보편적인 동기로, 두 명의 병사에서 다른 병사들과 일반인들, 그 위의 장교들까지도. 그리고 그 의지는 편지를 통해 가족들과 같은 화면 밖의 인물들에게도 이어진다. 이미 숱하게 다뤄진 반전의 메시지를 영화는 독특한 형식을 빌리면서 내용적으로도 세밀하게 쌓아올리며 전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1917>을 기술적인 부분, 특히 뛰어난 촬영만으로 평가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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