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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신익 Mar 10. 2017

[영화 리뷰] - <눈길>

단지 그 시간에 머물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어느 나라나 자국의 역사를 예술 작품의 소재로 삼곤 한다. 영화도 마찬가지. 역사 기록엔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사건들이 있었고 이는 관객들에게 어필하기 좋은 매력포인트가 된다. 하지만 역사를 영화로 만드는 데에는 단지 많은 관객을 동원하기 위함이 아닐 때가 많다. 그것이 아픈 역사면 더더욱 그렇다. 영화 <눈길>은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 위안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15년 KBS에서 방영한 2부작 드라마로 이번 개봉은 극장용으로 재편집된 버전으로 이뤄졌다. TV 방영을 목표로 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측면에서 굉장히 자유로운 편이고 이 문제가 어떻게 현재까지 작용하고 있는지, 그에 대해 날카롭게 물어보는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우선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연기다. 위안부를 연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분명 10대의 나이지만 당사자들이 겪은 고통이나 압박감을 생각해본다면 배우에게 요하는 감정의 무게는 상당할 것이다. 만드는 입장에서도 고민을 많이 할 것이 경험이 부족한 10대 배우를 캐스팅하면 당사자들에게 예의가 아니며 이 감정을 받아낼만큼 경험과 연기력이 쌓인 배우를 하자니 10대가 가진 순수함을 놓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김새론과 김향기라는 이 두 뛰어난 배우들은 그 당시 피해자들의 고통과 울분, 그리고 그 안에 가지고 있던 순수했던 감정까지 아주 뛰어나게 표현해냈다. 다시금 느끼지만 김새론은 동 나이대의 배우들 중에서는 대체가 불가능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이며, 지금도 작품의 폭이 굉장히 넓지만 성인이 되어 그 벽을 한 번 더 허물어버린다면 어떤 연기를 보여줄 지 정말 기대되는 배우이다.

  영화 내적으로 돌아와보자. 소재 자체가 자극적으로 다뤄질 여지가 많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절대 자극을 단 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그분들이 겪은 성적인 노역을 외부에서 일본군이 들어갔다 나오며 문이 열리고 닫는 것으로 최소화하고 낙태를 위한 약을 강제로 먹이는 것으로 강제성과 그 위압감을 잘 축약해낸다. 덕분에 영화는 지옥같고 보는 사람에게 무거운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로서 가진 희망적인 감정들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그대로 드러나는 것은 병이 든 소녀를 일본군이 총살하는 장면이다. 이를 남용하지 않아 극의 분위기를 저해하지도 않으면서 그 공포감을 순간적으로 끌어올리는, 아주 영리한 연출이었다고 생각된다.

  과거 뿐만 아니라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다. 현재의 종분[김영옥 분]이 마치 과거의 영애[김새론 분]와도 같은 은수[조수향 분]를 만나게 되면서 이를 사회가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드러낸다. 비록 직접적으로 은수와 영애를 연결시키지는 않지만 구석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 가진 핵심 키워드들(그들에게 죄를 지어놓고 적반하장하는)을 구현해놓음으로써 이 문제가 아직까지도 이어져 오고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영화는 희망적으로 마무리가 되지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질문을 하는 셈이며 영화의 분위기와는 상반된 일종의 경고를 남기는 것과도 같았다.

  <눈길>은 현상에 집중하지 않고 더 큰 그림으로 사건을 바라봤다. 과거의 어느 사건으로 기억하자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까지 이어왔다. 영화의 마지막에 239명 중 살아계신 건 39명밖에 없다는 문구를 넣은 이유도 이와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물론 다른 사건들과는 다르게 위안부 문제는 직접적으로 아직까지 끝나지 않았기에 이런 접근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비극적인 역사를 다룬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눈길>은 영화적인 측면에서 더 과감하고 다양하게 표현해냈다.(특히 같은 소재를 다룬 <귀향>과 비교했을 때 그 차이는 현저하다.) 개인적으로는 <귀향>은 흥행했지만 이 영화가 흥행하지 못한 것이 아쉬우며 비극적인 역사를 다룬다면 이런 시각과 영화적인 표현으로 다뤄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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