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누구나 연장통을 든 철학자가 되는 꿈

by 이승형

앞에서 하나의 타이틀을 달고 언급한 연장 외에도 수많은 연장들이 작업 현장에서 인간의 신체를 대신하거나 확장하고 있다. 몽키 스패너라고 불리는 집게의 폭을 조절할 수 있는 렌치(Adjustable wrench), 집게의 폭이 고정된 수십 종류의 또 다른 렌치들, 작업할 때 재료와 재료를 붙잡고 있는 클램프(Clamp), 강한 힘을 가해도 재료가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주는 바이스(Vise), 우리가 빠루라고 부르는 지렛대 공구인 바(Bar), 목재를 평탄하게 깎아주는 대패(Planes), 목공 작업의 마무리를 담당하는 사포(Sand paper)와 샌딩머신(Sanding machine), 목재와 금속 그리고 콘크리트등에 구멍을 뚫는 드릴(Drills), 목재에 홈을 파거나 조각할 때 쓰는 끌(Chisels) 등이 작업 현장에서 쓰인다. 이외에도 수많은 도구와 연장, 전동 기구들이 있다. 또한 같은 연장이라도 제조 회사에 따라 조금씩 형태가 다르다. 같은 회사에서 만든 연장과 도구라도 제작 연도에 따라 모양이 조금씩 달라진다. 이런 연장들의 수는 지구에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도구의 인간(Home Faber, 호모 파베르)이라는 말은 그러므로 매우 정확한 표현이다. 도구의 인간이란 개념을 제시한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에 따르면 인간은 유형, 무형의 도구를 만들면서 동시에 자신도 만들어 간다고 한다. 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그 도구를 사용하여 세상을 만들며 동시에 자신의 모습도 창조해 가는 존재다. 그렇다면 내가 든 연장통이 곧 나를 말해준다고 볼 수도 있다.

모든 직업인들은 그들만의 연장통을 갖고 있다. 즉 어떤 연장을 쓰는지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화가는 붓이, 작가는 연필과 키보드가, 프로그래머는 컴퓨터가, 사진작가는 카메라가, 음악 연주자는 악기가, 의사는 청진기가 연장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전적으로 어떤 연장을 쓰느냐로만 규정되진 않는다. 그렇게 살면 인간은 특정한 우물에 갇힌 채로 자신이 늘 쓰는 망치나 도끼만 반복해 쓰다 죽는다. 자신의 연장을 쓰는 경험을 확장시켜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는 보편적 인식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갇힌 우물에서 벗어나 드넓은 자유의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 추상의 영역인 철학이 구체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개인을 구원할 수도 있다.


철학사를 읽어가다 보면 연장통을 들었던 철학자를 만날 수 있다. 서양 철학의 문을 연 소크라테스는 아버지가 돌을 가공하는 석공이었다. 그도 가업을 이어 석공일을 했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자로 이름을 얻기 전까진 그의 손에는 돌을 다듬는 망치와 정이 쥐어져 있었을 것이다.

인류 철학사에 한 획을 그은 철학자인 스피노자는 생계를 위해 안경 렌즈를 깎고 다듬는 일을 했다. 스피노자는 렌즈를 다듬기 위해 그라인딩 휠과 연마판이라는 연장을 사용했다. 그라인딩 휠은 평평한 유리판을 안경 렌즈처럼 휘어진 형태로, 곡률을 가진 렌즈로 만들어준다. 연마판은 거친 유리 표면을 매끄럽고 투명하게 만드는데 쓰인다. 스피노자는 안경 렌즈를 맑게 만들어 사람들의 눈을 밝게 해주는 자신의 직업을 인류의 이성을 깨우고 세계관을 확장하는 철학적 사유와 연계했을 것이다.

현대철학자 중에서도 연장을 든 철학자가 있다. 매튜 크로포드는 시카고 대학교 정치철학 박사다. 그는 싱크탱크의 연구소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삶이 공허함을 체험한 뒤 오토바이 수리공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책상머리 지식인보다 오토바이 수리기사의 삶이 훨씬 지적으로 풍요롭다고 주장하고 이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바칼로레아라는 철학 시험이 대학에 입학하려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치러진다. 한 가지 논제를 택해 자신의 철학적 견해를 서술하거나 주어진 철학적인 글을 읽고 내용을 분석하고 해설하는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해 치른다. 어떤 문제나 주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기술할 수 있는 능력이 고등교육을 받는 기본 자질로 평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도 대학 입시에서 논술 시험을 보는 대학이 있다. 어떤 학문이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게 중요하다.

런데 이런 철학적 사유가 꼭 학문을 하는데만 필요할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마주하는 난제들보다 더 어려운 삶의 문제에 직면한다. 서툰 목수가 집을 고치기는커녕 망가뜨리듯 그런 인생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감정에 휩쓸려 마구 돌진하다가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목수가 문틀에 맞지 않는 문을 고치고, 배관공이 물이 새는 수도관을 수리하고, 페인트공이 빛바랜 벽을 다시 칠하듯이 철학은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연장 역할을 한다. 나는 우리가 쓰는 연장이 들려주는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우리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철학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만들어진 철학만이 우리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철학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례에서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끌어내는 학문이다. ‘철학은 뜬 구름 잡는 것 같다.’라는 말을 한다. 맞는 말이다. 철학은 지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하늘에 뜬 구름 같은 관념적 체계를 만들어내는 행위다. 철학적 사유는 추상에서 구체로 하강하여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례에 적용되어야 쓸모가 있다. 철학이 뜬 구름 같은 관념이 아니려면 역으로 철학적 보편성이 개별 연장을 든 개인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의 철학이 바탕이 되고 작업자의 철학이 구체적 작업에 투영되면 아름다운 가구가, 집이, 건축물이 탄생한다. 모든 위대한 건축가의 건물들은 한눈에 봐도 그의 스타일을 알 수 있다. 건축가의 철학이 일관성 있는 그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연장통의 연장들이 철학에, 철학은 그 연장들의 사용방법에 서로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다,


여기에 실린 나의 몇 편의 이야기들이 현장에서 연장을 써서 하는 노동이 그저 고달프고 지겨운 밥벌이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정립하고 세계관을 확장하는 새로운 지적 학습으로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연장통을 든 철학자가 된다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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