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악어의 이빨처럼
뺀찌를 한국어로 어떻게 바꿀까 고민해 봤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다. 너무 오랫동안 뺀찌로 불러서 아예 한국 단어가 되어버린 것 같다. 호주에서 이 펜치를 ‘쁘라이어’라고 부르는 한국분을 만났는데 플라이어(Pliers)를 세게 발음한 거였다. 뺀찌는 펜치라는 일본 말에서 유래했다. 영어의 Pincers가 일본식으로 변형되어 펜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Pincers가 플라이어의 한 종류다. Pincers는 우리가 안고 있는 뺀찌와 비슷한데 집게가 손톱깎이처럼 생겼다. 나는 주로 철사나 구부러져 빼기 힘든 못을 자를 때 쓴다. 그러므로 뺀찌를 영어로 부른다면 플라이어라고 해야 한다. 우리가 아는 뺀찌는 이들 플라이어 중에서도 Lineman’s pliers이다. 즉 라인맨의 뺀찌다. 라인맨은 전선, 통신선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기술자이다. 한국말로 하면 전기 기술자가 쓰는 뺀찌다. 이것으로 전선을 자르고, 피복을 벗겨내고, 두 개의 전선을 잇는다. 이런저런 연장을 장만할 형편이 안되니 우리 집뿐 아니라 대부분 이 라인맨의 뺀치 하나로 다른 플라이어를 대신했다.
그러나 플라이어도 라인맨의 그것 말고도 그 쓰임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현장에서 롱노우즈라고 부르는 Long-nose 플라이어는 글자 그대로 집게가 긴 코처럼 생겼다. 좁은 틈에서 뭔가를 끄집어낼 때 유용하다. 이 롱노우즈의 코의 끝이 구부러진 게 있는데 Bent-nose 플라이어라고 한다. 작업공간이 좁고 휘어져 있는 곳에서 사용한다.
그로브 조인트 플라이어(Groove joint pliers)는 집게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한국에서 니퍼라고 부르는 커팅 플라이어(Cutting Plier는) 전선이나 철사를 자를 때 사용한다. 이 니퍼도 한국에서는 센말로 니빠라고 부른다.
락킹 플라이어(Locking Pliers) 바이스 플라이어는 다른 플라이어가 손잡이를 놓으면 집게가 풀리는데 반해 손잡이를 놓아도 물체를 물고 있는 집게가 풀리지 않는다. 한쪽 손잡이에 집게를 고정시키는 나사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뺀찌가 상징하는 게 집중과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뺀찌는 사자나 악어의 이빨 같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사자와 한번 물면 뭐든지 절단 내는 악어를 닮았다. 뺀찌는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만들어서 손잡이를 꼭 움켜잡으면 집게가 물고 있는 물체에는 훨씬 큰 힘이 작용한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꼭 잡고 있어야 할 때 뺀찌를 쓴다. 뺀찌는 집게와 함께 자르는 날이 있다. 이 날 사이에 전선이나 철사, 노끈, 빠지지 않는 못자루를 넣고 손잡이를 눌러 잘라낸다. 라인맨들은 죽은 전기선이나 통신선은 잘라내고 살아있는 양쪽의 선을 뺀찌를 이용해 연결한다. 움켜쥐는 것과 잘라내는 것 그리고 새로운 선을 연결하는 기능들이 뺀찌에 있다. 그래서 집중과 선택이다.
살면서 우리는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한 곳에 힘을 집중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지렛대와 디딤돌이다. 지렛대는 내가 가진 역량이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능력과 기술, 지혜와 학식이 풍부해도, 나의 지렛대가 아무리 길어도 그것을 받쳐줄 발판이 없다면 세상에 나아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뺀찌는 두 손잡이가 교체하는 곳에 회전축이 있어 그것이 디딤돌 역할을 한다. 우리에게 지렛대의 디딤돌은 무엇일까? 내 삶의 믿는 구석이 하나쯤 있어야 내가 가진 지렛대로 힘을 써볼 수 있을 것 아닌가? 우리 인생의 디딤돌은 바로 가족이요, 친구요, 직장 동료요, 이웃이다. 그러나 뺀찌는 선택의 교훈도 준다. 사람이 중요하지만 전적으로 사람과의 관계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는 것을, 사람 볼 줄 아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나쁜 관계는 잘라내고 서로 좋은 관계를 새롭게 맺어 가야 한다는 것을 뺀찌는 말해준다. 좋은 사람들을 선택할 수 있는 기술,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내가 가진 역량은 빛을 발한다.
라인맨은 전기를 흐르게 해서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통신선을 타고 정보가 흐르게 하여 세상 사람을 연결한다. 그 라인맨이 쓰는 핵심 장비가 뺀찌다.
나에게 라인맨의 플라이어에 해당하는 연장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