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과 롤러(Brushes and Rollers)

선과 면의 예술을 위한 도구

by 이승형

페인트 칠은 일종의 마법과도 같다. 낡은 집을 가장 빨리, 가장 돈을 적게 들여 새집처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페인트를 칠하는 것이다. 그래서 호주에선 집을 팔 때 매매가를 올리려면 페인트를 칠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돈으로 2천만 원을 들여 집 전체를 페인트 칠하면 집 판매가는 1억 이상 오른다고 한다.

페인트는 일종의 화장이요, 메이크업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채로운 색으로 페인트 칠을 하면 미관상 보기가 좋다. 그러나 페인트는 사람의 얼굴에 화장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한다. 페인트는 칠하는 대상인 재료를 보호한다. 목재에 페인트를 칠하는 것은 마치 사람이 옷을 입는 것과 같다. 또한 페인트는 눈과 비와 습기로 인해 목재가 부식되는 걸 막는다. 직사광선을 차단해 목재가 강한 햇빛에 손상되는 걸 막는다. 금속에 칠하면 녹을 방지한다. 방수 페인트를 벽이나 바닥에 칠하면 건물에 물이 새는 걸 막아준다. 미끄럼 방지 페인트는 사람이 넘어져 다치는 걸 예방해 준다.

이렇게 중요한 페인트 칠을 사람들은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냥 페인트랑 붓만 있으면 아무나 칠하는 것 아니에요?'라는 식으로.


그러나 페인트 칠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칠하는 동작 하나만 놓고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그것과 연계한 전후의 여러 가지 일들이 있다.

가장 먼저 할 일이 청소다. 페인트 칠할 면과 주변 공간까지 깔끔하게 청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먼지나 이물질이 페인트 과정에서 묻어 들어가 지저분해진다. 두 번째로 칠할 표면을 보완하는 일이다. 벽과 천장 등에는 구멍이나 홈, 금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흠집들을 그대로 놓고 페인트를 칠하면 매끄럽지 않다. 구멍이 있으면 그것을 메꾸고 기존 면과 메꾼 면의 경계가 눈에 띄지 않도록 매끄럽게 갈아내는 사포질을 해야 한다. 세 번째로 페인트 칠하기 전에 다른 부분에 칠이 묻지 않도록 보호 커버나 테이프를 붙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페인트 칠하는 것보다 흘린 페인트를 지우는 데 시간을 더 쓰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사전 준비가 끝나면 붓이나 롤러로 페인트를 칠한다. 벽이나 바닥, 천장과 같이 넓은 면은 대부분 적당한 폭의 페인트용 롤러로 칠한다. 롤러가 회전하면서 페인트를 골고루 도포하니 가능하면 롤러를 쓰는 게 편하다. 붓으로 칠하면 붓자국이 남는 경우가 많다. 롤러는 칠하는 면의 크기나 모양에 따라 적당한 것을 고른다.

붓은 롤러가 닿지 않는 부분을 칠한다. 천장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나 벽과 벽이 만나는 곳, 벽과 바닥이 만나는 곳 등이다. 어디 곳이 든 롤러를 쓸 수 없는 곳은 붓을 쓴다고 보면 된다. 붓질은 주의력과 세심함이 요구된다. 그래서 현장에서 기술자는 주로 붓을 든다. 일부러 붓 자국을 만드는 경우를 제외하고 붓질의 기술은 그 흔적이 남지 않도록 칠하는 것이다. 품질이 좋은 붓일수록 칠한 흔적이 남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요즘은 붓과 롤러를 대신해서 스프레이로 페인트를 칠하는 경우도 많다. 스프레이 페인트는 페인트 분말이 날리는 위험성이 있어서 가구나 전자제품이 있는 기존 하우스에서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신축 건물인 경우 페인트 분말이 다소 날려도 문제가 되지 않으니 스프레이로 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 최초로 남긴 예술작품은 동굴벽에 그린 벽화다. 조상들은 몇 만 년 전에 동굴에 소, 사슴, 새 등의 그림과 함께 인간의 손바닥 모양을 남겼다. 손바닥 모양을 만들 때는 도료를 입으로 뿜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붓과 롤러는 인간의 그 손을, 때로 입을 확장한 도구다. 붓을 든 화가의 손으로 탄생한 명작은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남긴다. 오늘날에도 페인터들의 손에 의해 방이, 집이, 건물이, 도시가 생생하게 살아난다.


붓과 롤러가 우리 삶에 주는 교훈은 어떤 것일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한다. 페인트 일이 힘들다면 디테일한 부분 때문이다. 전체 페인트 대상 면적이 100이라면 디테일한 부분은 20프로도 안될 것이다. 이 20프로의 일을 어떻게 해내느냐가 전체 페인트 작업의 수준을 결정한다. 선은 면과 면이 만나서 만들어진다. 그 선들이 디테일이다. 페인터 기술자는 일하는 내내 선과 면과 씨름한다. 직선은 칼로 그은 것처럼 번지는 부분 없이 반듯하게 칠해야 하고 칠한 면도 페인트가 눈물처럼 흐르거나 붓자국이 나거나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고 매끈하게 칠해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도 선이 생긴다. 각자가 지키고 존중해줘야 할 영역이 생긴다. 그것이 페인트 칠의 선과 면이다. '선을 넘지 마라, 선을 지키라'는 말들을 요즘 자주 한다. 우리가 서로 지켜야 할 선들은 지키며 살자. 그리고 각자 서있는 면이, 내 마음결이 거친 모래를 뿌려 놓은 것처럼 우둘투둘하다면 사포로 갈아내어 부드럽고 평평하게 만들며 살아가자.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성된 선과 면을 우리가 어떻게 칠 하느냐에 따라 삶의 색깔이 달라진다. 우리는 모두 우리 삶의 페인트 기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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