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홈이 맞아야 마음을 열 수 있다.
지금은 못을 대신해 나사(Screw)가 일반적으로 쓰인다. 그래서 나사를 조이고 푸는 드라이버는 목수 등 현장 노동자들의 필수 연장 중 하나다. 오래전 지어진 집이나 제작된 가구를 살펴보면 머리가 일자인 나사들이 박혀있다. 이런 나사를 풀고 쓰는 데 사용하는 일자 드라이버의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 그런데 이 일자 홈 나사를 조이고 푸는 게 쉽지 않다. 일자 드라이버에 강한 힘이 가해지면 드라이버가 홈을 벗어나 버린다. 그래서 고안된 나사가 머리에 십자(Phillps), 별모양(Torx), 사각(Square), 육각(Hex) 홈을 한 나사들과 그 홈에 맞는 드라이버들이다. 이들 다양한 드라이버 중 십자형 드라이버를 Phillips라고 한다. 왜 필립스라고 부르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1932년 톰슨이라는 사람이 십자형 드라이버를 최초로 발명했는데 처음에는 이것이 산업현장에서 잘 쓰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필립스라는 사업가가 톰슨에게 십자 나사와 드라이버 특허를 매입해 대중화하는 데 성공했다. 1930년대 후반, 십자 나사와 필립스 드라이버의 도입으로 자동차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 십자 드라이버가 너무 효과적이라는데 있다. 십자 홈은 나사 머리 중간의 작은 홈에서 네 방향으로 갈라져 있으니 십자 드라이버 날의 크기와 십자 홈의 크기가 일치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나사를 조이고 풀 수 있다. 즉 중간 정도의 드라이버만 있으면 대부분의 십자 나사를 풀 수 있다. 그래서 일하기는 편하지만 아무나 적당한 드라이버 하나만 있으면 쉽게 풀린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한 것이 머리에 별, 사각형, 육각형 모양의 홈을 한 나사들이다. 이런 특별한 모양의 나사들은 꼭 맞는 드라이버가 있어야 조이고 풀 수 있다. 그러나 단점은 이번엔 반대로 나사 홈의 크기와 드라이의 크기가 일치하지 않으면 조이고 풀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다양한 형태의 드라이버 비트가 들어있는 통을 갖고 다닌다. 이들 드라이버 비트의 자루는 육각형 표준 사이즈로 되어 있다. 전동 드라이버에 이 육각형 자루를 삽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들 비트를 임팩트 드라이버 등에 끼우기만 하면 되니 나사 홈 별로 각각의 드라이버를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이런 특수 모양의 나사는 창틀이나 문짝, 배전함 등 쉽게 뜯기거나 열리면 안 되는 곳에 쓰인다.
나는 호주에서 아이폰을 수리하는 업체에서 몇 개월 일하기도 했다. 그때 주로 쓰던 도구가 아주 작은 필립스와 일자 드라이버였다. 스마트 폰은 크기가 매우 작다. 그 작은 공간에 수많은 부품을 결합에 넣어야 하는데 거의 바늘 끝만 한 십자 나사들이 쓰인다. 사람의 적응력은 무서운 것이어서 처음엔 그 작은 나사의 홈도 제대로 보이지 않더니 몇 달 만에 그 작은 홈이 10원짜리 동전만 하게 보였다. 아이폰을 분해 조립하던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드라이버와 친하게 지내던 시기였다. 하루 종일 필립스 드라이버를 오른손에 쥐고 아이폰이 실려오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 앉아 일했다.
한편 일자홈을 가진 나사는 거의 쓰지 않지만 일자 드라이버는 지금도 많이 쓴다. 예를 들어 길이가 30센티미터 되는 일자 드라이버는 페인트 뚜껑을 열 때, 도어를 달기 위해 바닥에 놓고 그 위에 문을 올려놓아 높이를 맞출 때, 한 두 장 깨진 타일을 떼어 낼 때 끌이나 송곳 대용으로도 쓴다. 무엇보다 앞서 이야기했듯 오래전 집이나 가구와 전기 소켓 등엔 아직도 일자 홈 나사가 박혀있기에 일자 드라이버는 아직까지 필수 도구다.
나사와 드라이버의 관계를 삶의 상처와 그것의 치유와 연계해 사유해 볼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상처들이 마음을 닫게 만든다. 그 상처들이 나사다. 나사 머리엔 홈이 있다. 일자 홈이 있는가 하면 십자 홈이, 별 모양의 홈이, 육각형 모양의 홈이 나사 머리에 있고 그것에 맞는 드라이버를 써서 나사를 조이거나 푼다. 우리 마음의 상처들도 제 각각이다. 각각의 상처들마다 다른 홈이 있다. 내 마음의 상처가 취업이 되지 않아 생겼는데 누군가 나를 위한다고 연인과 헤어질 때나 필요한 위로를 건넨다면 어떨까?
사랑하는 사람이 부당한 일을 겪어 괴로워하고 있는데 그에게 ‘인생은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더 큰 상처를 만든다.
나와 타인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려면 무엇이 마음을 다치게 하고 가슴을 닫히게 만들었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와 그녀의 마음을 다시 따뜻하게 해 줄, 가슴을 열게 해 줄 적절한 드라이버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