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밥 그릇 같았던 돌확
전기 믹서기가 없던 시절엔 돌확이라고 부르는 수동식 믹서를 썼다. 돌확과 비슷한 돌절구는 우리가 대부분 알고 있다. 이것은 홈이 깊고 절굿공이라는 기다란 나무 방망이로 벼를 찧어 껍질을 벗겨내 밥 짓는 흰 쌀을 만드는 도구다. 이 돌절구로는 떡을 치기도 했다. 돌확은 돌절구보다 키는 작고 홈은 얇고 넓고 고추나 마늘등을 갈아 양념 같을 걸 만들 때 사용한다. 갈돌은 손에 쥐고 돌확 안에서 이리저리 회전시켜 재료를 빻거나 짓이겨 분말이나 걸쭉한 액체로 만드는데 쓰는 주먹만 한 돌이다. 믹서기의 칼날에 해당되는 것이 돌확의 갈돌이다. 나는 돌확과 갈돌이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시를 쓰기도 했다.
주먹만 한 돌멩이 찾아다녔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돌만이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고
돌확에서 고추와 마늘을 갈아 낼 수 있었지
산과 들을 헤매고 다녀 마침내 발견한
작고 검은 돌
어느 별에서 날아온 운석일까
쇳덩이처럼 단단했네
어머니는 이 단단한 갈돌을 움켜쥐고
돌부처 밥그릇 같았던 돌확에서
고추와 생강과 마늘을 갈아 양념을 만드셨네
밭두렁에서 납작하게 자란 못난이 배추도
이파리에 구멍이 숭숭한 열무도
돌확에서 만든 양념으로 버무려 김치를 담그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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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정착민 되어 회사가 주는 시민권 받아 들고
어머니 소원대로 잘 자라고 많이 배운 며느리 앞세워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 가던 날
돌확은 이삿짐 트럭에 타지 못했네
돌확이 무언지 몰라도 좋은 시절
갈돌을 찾아 들판을 헤매지 않아도 되는 도시의 삶
단단한 그 무엇을 잃고 살아
부처님 밥그릇 같았던 돌확과
우주에서 날아온 갈돌이
날이 갈수록 그립단 말인가.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 슈퍼에 어느 날 양념을 갈아주는 분쇄기가 설치되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김장 김치 담그는 양념이 많이 필요하면 집에 있는 돌확을 쓰지 않았다. 대신 나에게 붉은 고추, 마늘, 생강, 굵은소금 등이 든 양동이를 주고 그것을 슈퍼에서 빻아 오라고 했다. 그러다가 우리 집을 포함해 집집마다 전기 믹서기를 구입해 쓰는 시대가 오자 돌확은 설자리를 잃었다. 돌확에서 갈돌로 만든 양념에는 어쩔 수 없이 아주 작은 돌멩이 가루 같은 게 들어간다. 김치를 먹다가 모래보다도 작은 돌가루라도 씹히면 사람들은 바로 알아챈다. 돌확은 고추나 마늘을 갈고 난 후엔 물로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 돌틈에 낀 작은 찌꺼기를 빼내고 말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전기 믹서기는 칼날이 마모된 파편이 들어갈 일도 없고 사용 후 세척도 편했다.
한국의 주거환경이 아파트로 대거 바뀌면서 단독 주택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던 돌확은 애물단지가 되었다. 무거운 돌확을 트럭에 싣고 고층 아파트로 옮기는 것도 큰일이었고 또 힘들게 아파트로 옮겨와도 쓸모가 없었다. 그래도 돌확과 함께한 추억이 있는 가정은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아파트에 이사 와서도 돌확을 어항이나 식물을 키우는 화분으로 썼다. 그러나 장남의 신혼집에 같이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된 어머니는 차마 돌확을 갖고 가자고 말씀하지 못하셨다.
돌확처럼 사람들도 밀려난다. 정성스레 다듬질용 방망이를 깎던 노인도 사라졌고, 집집마다 엿을 팔러 다니던 엿장수도, 집집마다 칼을 갈던 이들도, 시장에서 굉음과 함께 뻥튀기를 튀겨주던 사람도, 황소를 가르쳐 쟁이로 밭을 갈던 농부도 사라졌다. 사람들 대신해 몇 배나 생산성이 좋은 기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더 많은 물건을 더 빨리 만드는 시대가 되었으나 우리 삶이 몇 배 더 좋아졌는지는 의문이다.
요즘은 좋은 건 모두 어제, 과거에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최근엔 특히 인공지능 AI의 등장으로 사무직 노동자까지도 밀려나는 상황이다. 이러다가 사람이 노동하던 시대를 모두가 ‘그때가 좋았지’하고 그리워할지 모르겠다. 나도 돌확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