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헌책을 정리했다. 볼만한 책과 이론서들은 중고로 팔고 곰팡이가 슨 책은 버렸다. 오랜만에 몸을 움직였더니 갈증이 났다. 먼지 쌓인 방에 앉아 목이 긴 유리잔에 술을 따라 마시며 문장을 읽고 책장을 넘기는 동작을 반복한다.
책에서 삼십오 년째 책과 폐지 압축을 해 온 인부는 점토처럼 변해버린 폐지 더미를 삽으로 긁어모으는 일을 하며 '도시 하수도 깊은 곳에 버려진 시궁창 밑바닥을 긁어내는 기분'을 느낀다.
그 기분 알 것 같다. 살찐 기분, 뱃가죽 안쪽에 낀 지방 덩어리가 무겁게 짓누르는 느낌. 무게에 못 이긴 의자 시트가 회복될 가망이 없을 정도로 구겨지는 물리적 현상. 체중이 늘면 전보다 더 덥고 기분도 저조하고 대인관계도 귀찮아진다.
확실히 독서보다는 체중 변화가 생활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고로 책을 읽는 것보다 꾸준한 운동과 식단 조절이 필수이며 운동 후 독서가 최선이겠지만 나를 비롯한 인간은 그런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 어려운 다이어트 보다 살찐 기분을 잊어버릴 수 있는 쉬운 루트로 책 읽기를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니까 매일 독서하는 습관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지 말자. 좋은 책을 많이 읽는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진 않는다. 이참에 종이 더미를 좀 더 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