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나로 기억되길 바라며
어릴 적 기억나는 부모님의 모습은 자주 싸우시는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가시고 어머니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내쉬는 모습으로 기억을 합니다. 아주 어릴 적 가난과 주변 친구들의 놀림에 속상하고 우울한 나의 마음을 뒤로한 채 고개 숙이고 생기 없이 멍하니 바닥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동자 속 서러움이 더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 뒤로 부모님의 주변을 감싸는 감정들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들에게 필요한 모습으로 저를 맞춰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얼룩으로 물들여진 옷을 지우려 빡빡 문대듯 부모님의 한탄과 서러움을 머릿속에서 지워내려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설거지, 빨래, 청소 등 어떻게든 그 마음을 풀어주려 부단히 애썼습니다.
수많은 세월이 흘러 친구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고마워. 너라서 이런 얘기 할 수 있는 거 같아”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은 친구가 답했습니다.
‘너라서 이런 얘기 할 수 있다’ 나의 존재 이유를 다시 설명해 주듯 힘이 나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제 주변은 마음이 늘 힘든 친구들로 가득해져 갔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늘 일관된 태도로 들어주었고 공감해 주었고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애썼습니다. 이게 가장 익숙한 나의 태도였고 내가 느끼는 익숙한 감정들이었습니다.
흔히들 우리의 부모님이 첫 애인이고 첫 친구라는 말을 합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주는 감정이 나에게는 가장 익숙한 감정이고 부모님에게 대하는 나의 태도가 곧 내 친구들, 연인들에게 대하는 태도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런 나의 태도가 필요한 사람들로 주변에 남게 됩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에게 대해주고 있는 그 태도야말로 내가 가장 받고 싶은 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